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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실로 봉합을 했다. 金씨는 그후 또다시 작은오빠에 게 수술을 받게 됐다. 팔을 잘라 내어야하는 비참함을 맞지 않기 위해 어쩔도랴가 없었다. 마취제도 없이 젓가락으로 가루난 뼈조각을 찾아 내는 수 술을 한 것이다. 두 차례의 수술 후 뼈조각 7개를 찾아내고는 지금까지 옮지않고 무난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왼쪽 팔은 그때의 수술자국 때문에 오른팔보다 약간 짧아졌다. 또한 그의 이빨은 「南山봐학살사건」이후 6개월이 채 되기 1'- ____ -- __ ---J一 r •- 전 모두 빠져버 --= ""~- 의학의 발달로 툴니도 았고 이빨을 다시 끼울 수도 있다지만 40여년전 당시에는 단지 부드러운 음식을 골라서 먹는 방법 밖엔 별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총상을 입어 죽음에서 살아났다고는 하나 이빨이 없어 평생을 음식 한번 제대로 못먹는 고통스런 삶을 살아 왔다. 金유순 할머냐는 지나온 서1월 40여년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며 지대왔다고 증언했다. 「南ÙJ퇴양민학살사건」에서는 많은 처녀 총각들이 죽었다 고 鄭정진씨(57 . 內洞 당시 16서D는 증언하고 있다. 鄭씨는 당시 자신의 나이 또래는 거의 다 죽었다며 그는 체구가 아 * 주 작아 나이가 어려 보이는 바람에 살아났딱고 했다. 냐 ‘ 센、 각 그의 부친 鄭지석씨(당시 55세) 또한 머리에 상투를 하고 수섬플 길라 아주 늙쉬 보였다. 그닐- 새련 鄭써도 끌려나갔 으나 그의 아벼자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이리 저리 끌려 갔다가 겨우 살아났다. 그가 南山꾀에 끌려갔을 때 동네 처녀가 6명이나 끌려와 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들을 한 번도 ~ η < 니 n ι [ [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