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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l威平양민학살사건 착시켰다. 그리고는 『일어서 앉아」를 몇 차례나 반복시켰다. 순간 鄭씨의 머리엔 살려주려는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것은 완전히 빗나간 계산이었다. 그 구덩이 가로 빙둘러선 사병 7. 8명이 총을 겨누고 있 었고 높은 가장자리에 LMG기관총을 설치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드디어 누구의 업에서 인지는 몰라도 『사격개시』란 소리가 들렸다. 바로 「아비규환」 그것이었다. 콩묶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 렸다. 한참후에 총소리가 끝이 났다. 순간 權대위가 소리쳤다. 『산 사람은 일어나라. 하늘이 목숨을 돌보았기 때문에 살려 주겠다.Jj했다. 한 두사람씩 일어섰다. 鄭씨도 일어났다. 모두 8명이었다. 權대위는 『마을에 불이 났으니 빨라 내려가 불을 끄라』고 했다. 눈치를 보며 마을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그때 鄭씨는 장단지에 총알을 맞아 다리를 절었다. 움직이 려 하자 뱉혹펴쫓에 서 있델릎인이 눈짓옳 했다 크헐포는 총구로 엎드리라고 신호를 했다. 마침 權대위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였다. 鄭씨는 그대로 엎드려 피가 흥건히 고인 구덩 이 속으로 파고 들었다. 확인射殺 6 .25전란의 뼈아픈 상처. 이념갈등의 희생물이 되어버린 양민들.40여년이 지난 지금 한스랴움과 고통의 서1월을 살아 가고 있는 威平양민학살 현장의 생존자들과 유족들. 그들은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묘른 채 까족들의 죽음 앞 에서 천추의 한을 가슴에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 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