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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지십디다. 논 웃배미에 쓰러지셨는디, 그걸 보니께 내 눈동자가 딱 거꾸로 돌아룹디다" 윤씨는 그 길로 매복하던 곳에서 마을까치 달려내려왔다. “와서 본께 부친은 총은 안 맞었는디 왼쪽 옆구랴에 찰을 맞었습디다. 이 놈들이 총질을 해놓고 나서 돌아다남서 아직 숨이 붙은 사람들을 칼로 찔 러분거요 부친은 내가 갈 때꺼정 눈을 뺀히 뜨고 계십디다. 수족도 따떳하 고 기가 콰 맥히드만요 얼마 있은께 눈을 감으셨어요 글고 주위를 돌 아본께 동네사람 시체 천지여요 부친 옆에서 큰당숙모가 총에 맞아 즉사해 부렀고 갑문씨 조카며 관용이 내외, 오중이 어메·아부지, 말도 못해요” 결 양쪽 절팍질팍한 논바돼11 시체들이 쏟아졌던 것이다. 이때 희생된 부 할민이 댔여 명. 정확한 숫자는 알 수가 없다 현재 엔 못네에서만도 유력 핑혈용윌센켈산를모시는 분이-m여 변유 녁수二다고,한다. 그런데 어린이나 미혼남녀는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사망자 수를 알 수가 없고, 타부댁11서 모평으로 소개당했다 죽은 사람들도 파악이 불가능하다. 군인들은 기관충을 걸어둔 산에서 시채를 불에 태워버리기도 했다. “기관충을 차려놨던 산바탈에 종환이네 기핫막에 쓸라고 해놓은 장작베 늘이 있었어요 그 속에다 죽인 사람을 집어넣고 불을 질랴부렀어요 관용 이 처랑 애기들, 동네사람들 시체까지 다 꼬실라부렀지요. 쌍구령 일대가 시체 타는 냄새로 코를 못들었어요” 부면장 윤석훈씨의 증언이다. 그는 5중대가 철수한 뒤 그곳에서 불에 그 을은 사신들을 작접 목격했다고 한다. 5중대의 만행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모평학질이 있고 꼭 이틀 후 인 1월 14일 모평에서 1뾰 남짓 떨어진 함평군 나산면 우치리에서 또 한 차례의 살육극이 벌어졌다. ---- 마을사람들이 ‘계동댁’이라고 부르는 정유례(83·현재 우치라 거주) 할머니 의 팔꿈치에는 그날의 탄흔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40년이 지난 오 늘까지 장유례 할머니는 그렇게 팔이 부라진 채로 살아오고 있다. “5중대가 그래부렸어라우. 심줄만 붙어 있소 병에다 끈 달아놓은 것 같 160 - 4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