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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서 사람들은 마을을 비워놨는데 8중대가 턱 오드니만 ‘모평 같은 평야지대 까지 소개해불라븐 해보면에서 소개 안할 데가 없다’고 험서 다 동네로 도 로 들어가라고 합디다. 그래논께 올디 갈디 없어 아순 소리해감서 남의 동 네 붙어 있던 사람들은 얼씨구나 하고 제 집을 찾아 들어갔지라. 그런디 다 시 5중대가 와보니께 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거든. ‘이것들이 명령 불복종이구나’ 해갖고 다 나와라 해서 나오는 족족 다 싹죽여부렀든거요” 군인들은 마을을 덮치자 예외없이 집집마다 불을 놓았고 주민들에게는 o}을 앞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어떤 아낙은 이불과 쌀을 머리에 이고 나 오는 경우도 있었다. 주민들은 훨훨 타오르는 자기들의 집을 보며 발을 통동 굴렀으나 군인들 의 성화로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쫓겨나온 마을사람들이 해보와 나산간의 도로변에 있는 쌍구령마을 쪽으 로 가는 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주민들에게 갑자기 요란한 기관총세례가 퍼부어졌다. 월야면 동촌, 진다리나 원약i:Lß재 -마은마느 탁리 건계 해놓고 는 줄줄이 총으로 거꾸라뜨리 건이다. 당시 스물한 살의 청년으로 지서경비를 보조하던 ‘청년방위대원’이었던 윤석현(00.현재 모평 거주)씨의 증언을 들어보자; “나는 그때 살라고 ‘청 방’에 들어갔지 라. 경 찰한태 의심 안 받고, 밤손님한 테 끌려갈 염려 없고 그래서. 그날같이 추웠을라고요 눈발이 생생 날렸어 요 이 동네 제사날이 섣달 초나흘아니께 그날은 초닷새요 아침 일곱 시경 에 청방에 비상이 걸려 출동을 했지라. 우리는 소대장 인솔로 비녀봉에 올 라가서 잠폭플 했어요 포평에서 펀간펀들을 펼어내는 갑습피다. 야집 치 집, 이골목 저골목에서 사람들이 불거져 나오데요 나는 우리 마을서 어떤 사람이 나온다냐 하고 보고 있는디 두루마기를 입고 어떤 분이 첼 먼저 나 와요 그 뒤로 다른 사람들이 군인들 총대에 빌려 막 쏟아져 나온디, 찬찬히 본께 두루마기 입은 분이 우리 아버지가 아니겼소 아것이 뭔 일이다냐 싶 습디다. 사람들이 동네 바깥으로 나와서 썽구령 쪽으로 나갑디다. 걸어가고 있는디 갑자기 콩묶.으대끼 총질을 해불드만요 우리 아버지가 젤 먼저 쓰러 함평 159 - 4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