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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4백 호가 넘던 월악리는 5중대의 학살 이후 규모가 절반으로 줄었다- 들의 총부리에 밀려 송계마을 바로 뒷동산인 ‘남산뢰’로 모였다. 젊은 여자 나 처녀를 보면 5중대가 욕을 보인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일부 처녀 들은 급하게 머리를 올리고 이웃집 아기를 둘러업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 다. 남산꾀는 6개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조그마한 동산으로 이곳에는 움푹 패인 곳이 았다. 지금은 이곳에 대규모 양계장이 들어서 있지만 그때는 어 린이들이 모여 뛰놀기 좋은 장소였다. 솔숲 우거전 남산되에서 패려다보이는 4팩여 가구 6재 마을에서는 이날 불길이 활활 타오르면서 하늘을 가려버릴 가세로 연가를 뿜어내고 있었다. 끌려나온 주민 1천여 명이 모여서 공포 속에 웅성거리고 있던 오전 10시 경. 5중대장 권준옥 대위가 주민들 앞에 나섰다. 그는 “명당자리를 잡아야 겠다”며 군인·경찰가족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이때 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신분증명서를 내밀벼 “나는 방위 군 소위인데 후퇴를 못해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권준옥 대위는 권 함평 153 - 4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