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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멀리 피해버렸1:1-. 함평양민학살사건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이날을 시작으로 5중대 병력은 월야면·해보면·나산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니며 천일공노할 만행 을저지른다. 학살부대 11사단의 정체 그러면 대체 5중대는 어떤 병력이었고, 무슨 근거로 이와 같은 무차별 양민 학살을 자행했던 것일까. 우리는 이 부대가 속한 사단명칭이 11사단이라는 사실을 알면 단번에 산 청, 함양, 거창에서 양민을 학살한 바로 그 군인들이었음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산청 ·함양·거창양민학살사건은 1951년 2월에 자행되었으므로 어떻게 보면 그보다 2개월여 전에 일어난 함평양민학살사건은 11사단이 저지른 파 악가능한 만행 중에서 최초의 것에 해당하는 셈야다. 어쨌든 문제의 11사단은 미군의 인천상륙 이후 전세가 역전되면서 퇴로 를 차단당한 인민군과 좌익활동가들이 각지의 산악으로 들어가 유격활동을 벌이자 제8사단과 함께 1950년 10월 ‘공비토벌 전담사단’으로 호남지역과 경남 서부지역 일대에 주둔하게 된다. 아(我) 제11사단은 육본 작전명령 2fJ7호에 의거하여 단기 낌83년(서기 1떼년) 10월 10일 00:00에 대구를 출발, 동년 10월 14일 12:ω에 남원에 이동하고 토벌작전을 개시, 전투기간을 A 제1기(단기 42.83년 10월 7일'"'-'10 월 25일) D 제2기(단기 짧 3년 10월 26일'" 12월 31일) 6 제3기(단기 짧 4년 1 월 1일.....,1월 31일) D제4기(단기 짧 4년 2월 1일'"'-'3월 31일)까지로 각각 구 분하였다. (fJ공비토벌사』 삐쪽) 이에 따라 함평일대에는 ‘불갑산 공비토벌’을 목적으로 제11사단 20연대 150 4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