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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일부를제외하고각각의 유해가대체로개별적으로 매장 되었기에, 유품의 주인 또한확실히 판단할수 있었다. 위 조사성과들을 바탕으로 할 때, 유해는 대부분 동시기에 집단 매장되었으며, 매장자세는 얼굴이 땅바닥을향한채 엎드리거나비스듬히 옆으후누운형태,구 부려 있는형태 등다양하게노출되었다. 이러한양상과이울러 많은량의 탄피 들이 인골과그 주변에 흩어져 나온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 매장된 사람들은 M1과 칼빈 둥을 시용한 사람들 즉 우리 군에 의해 살해되었디는 사실을 웅변해 주고있다. 생존자문만섭씨중언과거의 일치되고있다는점을확인할수있다. 한편, 함평 해보면 운암마을 뒷산 유해매장지는 대퇴골과 경골 일부를 제외하 고인골이 없었다. 이러한%냉은 1지점과아주다른모습으로인골이 이미부식 되어 그 일부 흔적만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이곳 역시 1지점처럼 많은유해가 있 었을가능성만 확인할수 있었다. 설제 유가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에도 많은 유해가매장되었다고한다. 2. 유품의특징 출토 유품은 유해가 있는 곳에서 다량으로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생활용품과 전투관련 유물이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또한 의료용 약병과 더불어 기타 의료도 구(핀셋, 가위 등)가 출토된 점은 이 지점에 의무병 혹은 의무소대가 배치되었을 가능성이있다고볼수있다. 함평 유해발굴을 통해서 확인된 유품은 제1지점과 제2지점을 합해 총 1,048점 에 이른다. 제1지점은 유해와 더불어 그 유해의 소유로보이는 유품들이 함께 출 토되었다. 출토유품이 단순히 일부에 그치지 않고다양하게 출토 되었다는 점이 특정이다. 그라고출토유품의 양상을통해서 당시 함평사건 피해자들의 진상을 일부규명할수 있게 되었다. 제1지점은 유해 143여구와 함께 유해와 관련된 유품들이 함께 출토되었다. 기 본적으로 유해와 탄피가 함께 출토 된 점으로 보아 이곳에 매장된 사람들은 당시 힘평군항토문화연구회 i 173 - 4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