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page

[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사람이 많았다. 당시 불갑산 지구책 김용우 이하좌익 핵심간부들은 토벌군이 20 일 새벽 진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군 당국은 ‘무고한 국민’ 의 희생을 막 기 위해서 일부러 대보름 작전’ 의 소문을 퍼뜨려 선량한 입산자들로 하여금 슬 그머니 빠져나오도록유도했었다. 음력 대보름 날(정월 보름)인 2월 2[)일 동이 틀 새벽, 유갑열 중령이 지휘하는 제2대대 병력 7백 18명은불갑산의 무장공비 1백 20명을소탱하기 위하여 불갑산 을호빽37ß 방면에서 일제히진격을개시,옥죄어들어갔다. 우선 이영오중위가지휘하는%명의 제5중대는나산면초포라를출발하여 낮 12시쯤해보면상곡리 도로마을후방고지(339.강n)에 도달했다. 여기서 빨치산을 발견하고 공격하니 이것이 당일 오후 2시 %분까지 지속되었다. 그 결과 빨치산 들은 용천사 방면으로 분산 도주하였다. 이를 계속 추격한 제5중대는 해보면 금 계리 후방부근에서 잠복하여 적의 퇴로를차단하는 임무를맡았다. 이용매 중위가 지휘핸 1백 15명의 제6중대는 영광군 묘량면 영양리를 출발 하여, 오후 12시 불갑산 정상인 연설봉 고지를 점령 수색했다. 이후 용천사 뒷산 인 모악산으로 진출하여 강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끝까지 저항하는 빨치산들을 공격했다. 그결과공비들은 영광군불갑면 건무리 건무잔쪽으로달아났고,부대 는용천사부근 283.4m고지 아래의 노은재에서 잠복한채 공비들의 동정을감시 하논임무를수행했다. 강충호 대위가 지휘δ}는 1백 2[)명의 제7중대는 나산면 심축리를 출발하여 천 주봉(까.9m}을 거쳐 339.6m 고진에서 원판빨치산들을 낮1시까지 공격한 끝 에 용천사 쪽으로 도주하자 계속 추격한 다음 213.7m 고지에 이르러 퇴로를 차 핸}는 공격진지 선상에서 잠복했다. 신해희 중대장이 지휘하는 1백 25명의 제8중대 또한 해보면 금덕리 금콕마을 을출발하여해보면금계리에도착한후태청산{593.3m)으로이어지는빨치산들 의 퇴각로를차단하기 위해 잠복해 있다가 283.4m 고지의 노은재 일원에서 작전 중언 제종대와 함께 용천사로부터 노은재에 이르는 일대의 불갑산을 사수하겠 다는 빨치산들에게 총공격을 가했다. 육박전까지 벌어진 교전 끝에 노은재 고지 힘평군항토문화연구회 i 163 - 424 - 1 ‘ ," _"\ '_,Æ~션캉낯i굶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