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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그리고 나산면 이문리 사정마을에서도 집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학교를 다 녀오는 중학생 등 10여명을 이문초등학교 옆 논에서 학살하였다. 1950년 12월 31일 해보면 대창리 쌍구룡에 들어온 5중대 군인들은 마을 사 람들에게 해보면 소재지로 피난을 가도록 가가호호 방문하며 명령을 시달한 후 피난 7}는 주민을 향하여 총을 쏘아 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였고 양심 이 있는 군인은 7살의 어린 소녀(이금남)가 총상을 당하고 죽지 않은 상태임을 발견하고 수장 않도록 도와주어 생명을 건졌다. 1951년 1월 12일 해보면 상곡리 주민들에게도 면소재지로 피난가도록 한 후 피난대열에 총을 난사하여 무차별 학실하였으며 이를 은페하기 위해 죽은 자들을 쌍구룡 도로변의 들샘에 수장시커는 잔인한 방법도 사용하였으나 모평 과 쌍구룡에서 해보 양민 128명을 학살하였다. 1951년 1월 14일 나산면 우치리 소재마을에서는 인근 해보면 모평과 쌍구 룡에서 희잘당하는 소문을 듣고 5중대 ‘ 군인이 마을로 접근하자 젊은 사람과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피신하였고 노의t자들만 집에 있다가 마을 앞 논에서 $ 명을 학살하였다. 그 외 12여 지역에서도 2""'7명씩 학살당하였다. 6. 희생자를 위한 명예회복 노력 가.국회차원 국회차원의 희생지를 위한 진상조사와 명예획복을 위해 제4대 국회악원 김 의택 의원과 박상길 의원이 특위구성을 요구하여 국회 제35회 임시회 제19차 본희의(60. 5. 23)에서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빼 총9명 의 국회의원윌위원장 : 최 천) 위원으로 임명하여 @년 5월 31일부터 6월 10 일까지 11일간 진상조사 활통을 하였다. 6월 21일 국회 제35회 임시회 제낌차 본회의에 특위활동 결괴를 보고하였 고 대정부 건의안 2개항을 채돼한 후 민의원의장 곽상훈이 허 정 국무총리에 게 서면으로 조치토록 통보하고 특위를 종료하였다.C 돼 보고서와 현장 조사 기록이 국회 사무처 문서고 보존) 나.도의회차원 0 제2대 도의회 제57회 정기회 제1차 본회의(60. 6. 2)와 제6차 본회의(60. - 361 - 양심있는 군인도움 많은 곳에서 착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