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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발발하고 유엔군과 국군이 반격을 시작뼈 서울을 탈환하며 북한군을 계속 추격하는 가운례 1950년 8월 27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54호로 국군 제11사단 을 창설하고 이 부대로 하여금 공비토벌의 역할을 맡겼다. 이 과정에 지라산 공비토벌을 담당한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 제2대대 제5 권준옥이 햄 중대 중대쟁權俊玉대위)과 5중대 군인협l 의하여 1950년 12월 6일 함평군 월야면 정산라 장교, 동촌, 죽림마을을 시작으로 양민을 학살하기 시작하여 12 월 7일에는 월야면 월악리 남산외에서. 12월 9일에는 월야면 외치리 외치마을 과’나산면 이문랴 이문초등학교 없사정마을)에서 집에 있는 주민들을 마을 앞 으로 모이도록 하여 학살을 하였다. 또한 12월 31일 해보면 상콕리 쌍구룡 국도24 호 도로변과 1951년 1월 12일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에서는 면소재지로 피난을 가도록 명령을 한 후 피난 대열에 총을 난사하여 학살하였다. 그리고 1월 14일 나산면 우치리 소재마을에서도 집에 있는 노약자들을 마을 앞 논으로 집결시킨 후 전원을 학살하였고 기타 지역에서도 학실하였다. 함평사건은 1950년 12월 6일부터 1951년 1월 14일 사이인 30일간에 발생한 “견벽청oj:" 사건이며, 11사단장 崔德新의 “견벽청얘堅題춤野Y’작전을 성실히 수행한 결과 국회 과거사 진상특위 를 하루 앞둔 2003년 11 월 25 일 상경한 유족회원들 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진 촬영 모습이다 유족회 정 근욱회장과 합평, 영광 지 구 국회의원인 이낙연의 원 , 그리고 함명양민학살 을 전국적으로 알리는데 가장 큰공헌을 했던 김영 택 전 동아일보 기획위원 등의 얼굴이보인다. 과거사진상특위를앞두고상경한유족회원들의 국회의사당앞사진촬영 껴 i ζ 니 q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