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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군의 훼방을 받는 해프닝까지 있었지만 어찌 됐 건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파문을 일으켰던 것은사실이다. 이에 비해 함평사건은 어느 누구도 cl를 거론 하지 못한 데다 주민들마저 공포에 휩싸여 입을 다물어야 했다.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4.19후 국회에서 거론되는 듯 했으나 흐지부지되어 버렸 고 한 신문에서 극히 부분적인 내용만 언급했을 뿐이다. 그로부터 28년, 사건 발생으로부터 38년의 세 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동안 억울하게 숨져간 영 흔들의 넋을 달렐 기회는 찾아오지 않은 채 오늘 에 이르고 있다. 유가족이나 현지주민들은 「나는 억울하게 죽었으니 세상사람들은 그런 사실이라 도 알아달라」고 외치는 듯한 영혼들을 달래주어 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특히 일가족 몰살로 연고자를 만나지 못해 아 무렇게나 내통탱이쳐졌다가 묻혀 버렸던 고혼들 을 위해서도 어떤 계기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겠 는냐는 입장이다. 거창쪽에서는 요즘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나 명예회복을 위해 유족들이 모임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함 평에서는 사건 자체가 은폐되어 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이냐」며 통분하고 있다. 더욱이 이때 희생당한 사람들은 거의 공비로 보고 되었음인지 나중에 유족들은 당국으로부터 사상적 오해를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함평 군 나산면 우치리 L씨(52)는 과거 교사발령을 받 을 때 당시 학살당한 어머니때문에 신원조회 과 정에서 문제되었다가 L씨의 강력한 항의로 유야 87 n / ι >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