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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보도자료 1949년-2010년] 목요일 2월 1 일 .. 2 001년 섣- 음력 1 월 9일 : -남도민~f.진펀;.죠 AF:호I R r; ; 홉}흘릎 늄폐 i혹 칠I룰츠} ~ 、톨를 또한 인근 섬말(도두y 마을주 변 야좌1에서 농사를 준비하던 농 부 40명이 이초}에 매복중이던 군 에는 구국총연맹이 주재히고 있 인에 의해 시-살돼 총‘ 136명의 양 었다. ’ . 민이 희생됐다. 150정도의 원전무장 군인들은 같은 부대에 의해 저질러졌던 세지면 패ι년1 월대마을 입구에 함평사건은 지난 %건 국회에서 서 행인1평을 시살하고 또다시 진상조시카 이뤄졌으나 나주 동 행인1명을 무차별 사살했다. 창사건은 4앤견 동안 진상조사는 동창마을에서는 집집마다 ‘강 커녕 위령제 한빈 지내지 못i 봐 연’을 명분으로 주민들을 동장교 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밑으로 집걸시키고 모인 사람 96 합동위형제를 지내게 된 것이다. 령을 1열에 12명씩 8열로 줄을 ι}주시는 국회차원의 진S뮤명 세운후 아기를 업고 나온노점숙 이 이뤄지면 백서 빌칸과 위령탑 (국민학교사 박영만의 처)씨를 건립 등 무고한 양민의 명예회복 시작으로 12평의 군인이 중대장 을 위한 세부시항을 추진키로 하 의 지시에 따라 ìvI1소총으로 사 고 계획을 수립중에 있다. 격; 획인‘ 시살했다. ‘’‘ ‘ 〈다주i김관선기자γ 주관 나주 세자 양민학살진상추잔위 동창교서 오는,~ 3일 명예회복을 꾸준히 추진해왔r:+. 이후 같은해 12월 나주시의회 에서 진상조사 요구안을 결의했 고 99년2월에는 양관학살사건 청 원서를 국회에 제출해 정부차원 의 해결책을요구했다. 당시 생존자 및 관계자들의 증 언을 통해 본 동창교 양민학살사 건의 진상은다음과같다 51년 1월20일 국군 11사단‘ 20연 대 2대대 5중대 (중대장 권준옥) 가 영산포를 경유해 세지떤쪽으 로 아동하고 있었고 당시 영산포 진상규명 청원 국회차원 조사 촉구 명예회복 추진 오는 3일 나주시 세지면 동창 교에서 세지 동장 양민학살진상 조사추진위원회 (회장 이상계 시 의원) 주관으로 지난 51년1월20 일 국군에 의해 무고하게 숨진 136명의 희생X써 대한 합동위령 제가열런다. 이 양민학살사진은 그동안 유 족들의 한으로만 이어져 왔으나 98년7월 처음 진상규명 추진위원 회가 구성된 이래 진쇼L규명 결의 대회와 유족회 창 립 등을 동해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끼 / ] 1 l A 1 l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