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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07 “이재용은 숙부인데 그날 새벽 총격이 시작되자 그분은 송사리를 거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군유산으로 가던 중 뒤쫓아 오던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는데 각기 따로따로 갔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총을 맞았는가는 모르겠습니다. 시신은 제 어머니와 숙모님이 가셔서 수습하였습니다. 저는 총알이 쏟아지자 정신없이 뛰어서 삼천동으로 내려왔습니다.” 210) 신청인 이기춘도 “아버지의 시신은 어머니께서 가족들과 함께 가셔서 어른들과 함께 수습하였다”고 진술하였다. 211) 정휴상(다-7288)의 형 정동일은 수정동에서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경찰에 잡혀 손불 면 북성리 사기마을 뒤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다음은 정휴상의 진술이다. “형님 정동일은 목포에서 방위장교 교육을 받고 휴가를 나왔는데, 마을이 소개되어 가족 이 복흥리 복치마을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방위장교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좌 익들이 저의 가족을 군유산으로 끌고 갔습니다. 2월 19일 형님과 사촌형님이 경찰에게 잡 혀갔습니다. 그런데 사촌형님이 형님보다 나이도 한 살 어리고, 덩치도 작아 형님은 어른으 로 취급되어 경찰에게 총살되었고 사촌형님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212) 복흥리 복치마을에 소개를 나갔다가 좌익들에게 군유산으로 잡혀갔던 정상일은 같은 마을 노동안으로부터 정동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정상일의 진술이다. “수정동 노동안이 손불지서로 잡혀갔다 풀려나왔는데, 노동안이 ‘정동일이 사기마을 뒤 모 래밭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경찰이 분류하였는데 사촌형 정동일은 죽일 사람 대 열에 있었다고 합니다. 사촌형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노동안은 손불지서를 거쳐 돌아왔습니 다. 시신은 음력 정월 17일에 수습하였습니다. 노동안은 20여 년 전에 사망하였습니다.” 213) 라) 그 외 지역 보여리는 군유산 우측에 위치하며 군유산과 불갑산의 연결 통로 상에 있는 마을이다. 보여리는 1950년 12월 12일 경찰 진주 후 마을이 소개되었으나 피난을 나갔다가 돌아온 주민들이 마을에서 피해를 당하였다. 신청인 곽일례(다-2302)는 결혼하여 시숙모 주단임214)과 시사촌인 박균신 형제가 1950 210) 참고인 이점례 통화보고(2009.8.24.) 211) 신청인 이기춘 진술조서(2008.4.5.) 212) 신청인 정휴상 진술조서(2008.8.21.) 213) 참고인 정상일 진술조서(200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