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page

제 7 권 100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이재순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재중은 저와 6촌간으로 저보다 손위였습니다. 이재중은 군유산 봉우리에서 돌아가셨 습니다. 시신은 가족이 수습하여 선산인 기봉굴에 매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74) 나) 송사2리 송사2리는 삼천동과 해안마을이다. 송사2리 해안마을은 1950년 12월 12일(음력 11월 4 일) 경찰이 진주하였다. 175) 송사2리 삼천동과 해안마을에서 군유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손불면 북성리 차경, 사기 마을을 경유하여야 한다. 경찰도 신광면 계천리 경찰고지에서 군유산 주변의 토벌작전을 다닐 때는 삼천동과 해안마을 앞을 통과하여 북성리까지 다녔다. 이 때문에 삼천동과 해 안마을 주민들은 사건 당일 군유산에 올라가거나 내려오던 중 손불면 북성리 사기마을과 차경마을 뒤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 송사2리 삼천동에 거주하였던 배정준(다-3654)의 어머니 최명덕과 큰형 배금술 등 가족 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배정준의 어머니는 마을 뒷산 8부 능선에 있는 선산부근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았다. 큰형은 군유산 정상에서 경찰에게 잡혀 손불지서로 연행되었다. “어머니는 삼천동에서 군유산으로 피난을 가던 중 누나 배복실이 총상을 입자 마을 뒤쪽 으로 돌아서 군유산을 올라갔는데, 영광군 군남면 포천에서 올라오는 경찰을 보고 숨어 있 었습니다. 어머니는 동생 금련(호적 없음)을 안고 있다가 경찰이 다가오자 바위 밑으로 굴 렀는데 그때 경찰이 쏜 총에 맞았습니다. 경찰이 피난민들을 불러 올라갈 때 사망하신 어머 니를 보았습니다. 큰형은 군유산에서 손불지서로 함께 끌려갔다가 돌아온 매형이 대전리 대행동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다고 말해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176) 배정준의 어머니 시신은 아버지가 현장에서 숯으로 덮었고, 형님의 시신은 누나와 매 형이 일꾼을 데리고 가서 수습하여 현장에 매장하였다. 177) 어머니의 젖을 물고 있던 동생 174) 참고인 이재순 진술조서(2009.3.4.) 175) 신청인 안의순 진술조서(2008.4.23.) 176) 신청인 배정준 진술조서(2008.8.10.) 177) “저의 할아버지를 찾으러 작전 이튿날 군유산에 올라갔다가 최명덕의 시신을 보고 마을로 내려와서 가족 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현장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매장하였 다고 들었습니다. 배금술의 시신은 가족들이 대행동 뒷산에서 수습하여 그곳에 매장하였다고 얘기를 들 었습니다.” 참고인 최정의 진술조서(20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