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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96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아오지 않았다. 김가현은 “외가가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였는데 형님과 사촌형님 김재현은 남창리 ‘동굴뫼’ 부근 하천에서 경찰에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155) 사간동 이종환(다-6738)의 백부 이봉온과 사촌형 이종진 등 큰집 가족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이종진은 군유산에 피난 중 군유산 연흥사 앞 골짜기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어 1주일 후에 사망156)하였고 큰아버지 이봉온은 손불면 북성리 사기마을 군유 산 계곡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다음은 이종환의 진술이다. “저는 군유산으로 피난을 가지 않고 사간동 옆 야산에 혼자서 있었습니다. 사촌형님이 큰아버지를 모시고 피난을 갔는데 군유산에 올라가다 부상을 입었고 큰아버지 이봉온157) 은 북성리 사기마을로 내려오시다가 사기마을 뒤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습니다. 이종 진의 시신은 처가에서 수습하였고 큰아버지의 시신은 집안에서 수습하였습니다.” 158) 또 같은 마을 김창현(다-3650)의 아버지 김정남 등 가족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김 창현의 아버지는 동생 김종성(미호적)을 업고 피난을 갔는데 군유산 중턱에서 경찰의 총 격을 받았다. 159) 김용호(다-10803)의 계조모 남천댁(혼인신고 미필), 송계 김정기(다-2306)의 조모 박막 동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가다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진실규명대상자 김정남과 김종성, 남천댁, 박막동 등의 시신수습 여부에 대하여 당시 시신을 찾으러 다니면서 시신 수습 또는 시신을 목격한 참고인 김채섭은 다음과 같이 진 술하였다. “형수 최인림과 어린 질녀(호적 없음)는 손불면 북성리 사기마을 뒤 군유산 봉우리 아래 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곳에서 형수와 질녀의 시신을 보았습니다. 군유산작전이 끝난 바로 뒤에는 경찰이 허락이 없어 시신을 수습하러 갈 수 없다가 20여일이 지나서야 시신을 찾으 러 다녔습니다.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는 저의 형님과 함께 찾으러 가서 큰 바위 밑에 쪼그 155) 신청인 김가현 진술조서(2008.3.26.) 156) “이종진은 이택동이라고도 불렀는데 군유산작전일에 연흥사 앞에서 경찰의 추격에 김삼동과 함께 도망 가다가 이종진만 허벅지와 배에 총을 맞았습니다. 이종진이 총을 맞은 연흥사 앞 골짜기는 군유산 정상 에서 내려가는 통로에 있어 여러 사람이 보았습니다. 이종진은 그 뒤 처가에서 치료하다가 1주일 뒤에 사망하였습니다. 김삼동은 정상적으로 살다가 그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참고인 정내숙 통화보고 (2009.10.22.) 157) “이봉온은 이종환의 큰아버지인데 북성리 사기마을로 내려오다 사기마을 뒤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 여 임시로 그곳에 묻었다가 나중에 이장을 하였다.” 참고인 김동현 통화보고(2009.9.15.) 158) 신청인 이종환 진술조서(2008.4.17.) 159) 신청인 김창현 진술조서(2008.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