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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93 가다 경찰에게 죽었습니다. 공정엽의 택호가 나리매양반인데 “나리매양반이 죽었다”고 하 여 알게 되었고 산남리 용흥 부근 ‘옷빠골’에서 시신을 찾아왔습니다.“ 141) 사) 그 외 지역 양재리 모량마을에 살았던 모재원(다-4275)의 숙부 모종술은 1951년 설 직전에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2월 26일 대동면 향교리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왔다. 다음은 신청인 모재원 의 진술이다. “숙부는 인민군 점령기 인민군 편에서 활동하여 경찰이 연행하였습니다. 그 뒤 총살되었 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신을 찾았는데 20여 일이 지난 1951년 2월 26일(음력 1월 21일)에야 대동면 향교리에서 찾았습니다. 형님 모장원이 전쟁 전엔 구례경찰서 경찰이었고 전쟁 후 에는 국군에 입대하여 삼촌이 피해를 막으려고 인민군 쪽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142) 모종술이 1951년 설 직전 경찰에 연행되어 대동면 향교리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온 사 실에 대하여 같은 마을 참고인 모학기는 “모종술은 당시 나이가 30살 정도였다. 그 사람 은 인민군 점령기에 반란군 편에 섰었던 것 때문에 수복 후 경찰을 피해 다녔는데 대동면 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어 시신을 수습하여 왔다”고 진술하였다. 143) 동암리 벽초 나영주(미신청)의 아버지 나상균은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경찰이 몰 려오자 군유산에서 내려와 영광 군남면 석정리 처가로 갔다. 나상균은 다음날 저녁 경찰 에 연행되어 마을 앞에서 총살되었다. “어머니께 들었는데 아버지는 인민위원회에 다니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시신은 외가 에서 수습하였고 손불면 궁산리 묘동에 이장하였습니다. 동암리와 죽장리에 아버지와 같이 인민위원회에 다녔던 분이 더 계셨는데 죽장리 분은 그 뒤 경찰에 자수하여 무사하였다고 합니다.” 144) 나상균의 동생으로서 인민군 점령기 동암마을 소년단 단장을 하다가 군유산 아래 사기 마을에서 생활하였던 나장균은, 나상균이 영광 군남면 석정리에서 경찰에 끌려 나가 살 해된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141) 참고인 홍연례 진술조서(2009.5.29.) 142) 신청인 모재원 진술조서(2008.6.9.) 143) 참고인 모학기 진술조서(2009.5.27.) 144) 참고인 나영주 진술조서(2008.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