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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92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바) 궁산리 궁산리는 함평읍과 손불면 소재지 중간에 위치한 마을로 다른 지역에 비하여 치안은 일 찍 회복되었지만 군유산작전 직후까지도 경찰이 주민들을 연행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궁산리 이창범(다-4288)의 아버지 이경민은 1951년 3월 3일(음력 1월 26일) 경찰에 연 행되어 함평경찰서로 이송 도중 함평읍 장년리에서 경찰 윤상록135) 등에게 살해되었다고 진술하였다. 136) “아버지는 인민군 점령기 마을에서 구장을 맡았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 윤상록이 연행하 였습니다. 윤상록의 부친이 반란군에게 살해되었는데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오다가 아버지 를 만나 연행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인민군 점령기 구장을 하셨던 것 때문에 경찰이 들 어오자 자수를 하고 사건 발생 무렵에는 함평읍에 계셨습니다.” 137) 궁산리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김관석은 이경민의 사망은 경찰 윤상록 및 윤상록의 사촌 과 관련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은 김관석의 진술이다. “이경민은 인공시기부터 구장을 맡았습니다. 윤상록은 윗동네인 덕산마을에 살았는데 아 버지가 반란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윤상록과 의용경찰인 사촌이 이경민을 연행하였습니 다. 궁산리 덕산 김판중138) 도 이날 연행되어 죽었습니다. 이경민은 경찰 ○○○이 친구여서 그에게 자수하여 통행증을 받았는데 시신을 수습할 때 보니 그 통행증도 없어졌습니다.” 139) 궁산리 신흥마을 공천수(다-7794)의 아버지 공정엽도 동생 공정영이 인민군 점령기에 반란군 편에 섰던 것 때문에 피신하였다. 1951년 3월 9일 손불지서에 가던 공정엽은 산남 리에서 경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140) 공정엽의 사망은 당시 같은 마을에 살았던 홍연례 가 시신을 목격하였고, 장례를 치렀다. 참고인 홍연례의 진술이다. “공정엽의 동생 공정영이 반란군 편에 있었습니다. 손불 수복 후 지서에서 공정영을 잡 으러 자주 나왔는데 동생 때문에 공정엽도 피신하였습니다. 공정엽은 손불지서에 자수하러 135) 사건 당시 손불지서에 근무하였던 경찰 윤상록은 1958년 나주경찰서에서 퇴직하였다. 함평경찰서 경무 과-003451(2009.7.24.) 136) 신청인 이창범 진술조서(2008.6.11.) 137) 신청인 이창범 진술조서(2008.6.11.) 138) 김판중의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김판중은 1906년생이었으며 사망신고는 미필이었다. 139) 참고인 김관식 진술조서(2009.3.18.) 140) 신청인 공천수 진술조서(200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