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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90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마을에 경찰이 들어와 숙부를 찾았는데 숙부는 학산 리 앞 바다에서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습니다.” 126) 배재고․배재만 형제의 사망과 관련하여 배재고의 재당질인 배귀태는 다음과 같이 진 술하였다. “배재고, 배재만 두 분은 7촌이 되는 분들입니다. 배재고는 동생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배재고는 군유산작전 뒤 음력 4월경에 돌아가셨고, 배재만은 그 뒤 해은마을 앞 바다에서 총살되었습니다. 배재고의 시신은 동네 어른들이 수습하였고, 배재만은 배를 타고 도망가 는 것을 총살하였는데 시신은 동네에서 수습하여 매장하였습니다.” 127) 같은 금곡마을 김상기(다-4684)의 아버지 김장수도 군유산작전 이후 마을에 들어온 경 찰에 의하여 마을 들머리에서 살해되었다. 신청인 김상기는 “경찰이 마을에 와 아버지를 찾아내라고 하여 큰아버지가 아버지와 같이 나갔는데, 경찰이 아버지에게 마을로 돌아가라고 하고 돌아서니 뒤에서 총을 쏘았 다”며 “아버지는 뒷산에 모셨으며,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음력 1월 19일에 제사를 모셨 다”고 진술하였다고 진술하였다. 128) 김장수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김장수의 재종동생으로 한 마을에 살았던 참고인 김재수 는 “군유산작전이 끝난 뒤부터 경찰이 마을에 다니면서 젊은 사람을 잡아다 죽였는데 김 장수도 금곡마을 앞 비석거리에서 총살당하였다”고 진술하였다. 129) 김장수의 희생사실에 대하여 당시 학산리 금곡마을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배정문의 진 술이다. “군유산작전 직후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서 주민들을 나오라고 하여 당산나무 아래에 집 결시켰는데 김장수는 도망을 하다 총을 맞았는데도 도망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집에서 치 료를 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다시 들어와 연행하여 마을 앞 비석이 있는 곳에서 들어가라고 하고 20m쯤 가자 총격을 가하여 사살하였습니다.” 130) 같은 마을 김요환(다-4688)의 큰형 김천수도 1951년 2월 경찰에 연행되어 살해되었다. 126) 신청인 배호묵 진술조서(2008.5.20.) 127) 참고인 배귀태 진술조서(2009.6.9.) 128) 신청인 김상기 진술조서(2008.3.22.) 129) 참고인 김재수 진술조서(2009.6.10.) 130) 참고인 배정문 진술조서(2009.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