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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89 불을 끈다고 백조룡, 백대윤121) 도 경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122) 지호마을 백두인(다-4417, 4989)의 어머니 최복덕과 형 백병인도 1951년 2월 20일과 2 월 26일 경찰에 연행되어 살해되었다. 지호마을은 좌우익 간 갈등 때문에 피해가 많았는 데 백두인의 어머니 최복덕도 경찰 쪽에서 활동하였던 ○○○ 등에 의하여 피해를 입었 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은 백두인의 진술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나 이웃집에 ○○○이 살았는데, ○○○이 손불지서 경찰과 함께 마을 앞에서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마을에 백씨, 김씨, 박씨 등이 살았는데 백씨가 제일 많았습니 다. 그런데 백씨와 김씨가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어머니도 이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123) 군유산작전이 끝난 뒤인 1951년 2월 당시 지호마을 상황에 대하여 당시 학산리에 거주 하였던 참고인 백영해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백병인은 저보다 한 살 더 많았는데 그 분은 군유산작전 다음날 경찰이 어머니를 살해하 자, 산남리로 가서 좌익 활동을 한 김삼섭과 같이 숨어 있었습니다. 백병인은 5, 6일 후 경찰 이 김삼섭과 함께 총살하였습니다. ○○○ 집안은 알아주는 부자였습니다. ○○○이 반란군 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미움을 받아 가족이 반란군에게 살해되기도 하였습니다.” 124) 군유산작전 직후 경찰은 마을에 들어와 주민을 집결시키고 부역자 및 좌익 활동 혐의 자들을 연행하거나 살해하였다. 금곡마을 배호묵(다-4274)의 아버지 배재고, 숙부 배재만이 1951년 5월 20일 금곡 앞에 서, 7월 10일 손불지서에서 살해되었다. 신청인 배호묵은 배재고의 사망에 대하여 “아버 지는 숙부 배재만이 좌익 활동을 하여 군유산작전이 끝난 뒤 함평경찰서 기동대가 마을 앞으로 불러내어 살해하였다”고 하였다. 125) 다음은 신청인 배호묵의 배재고․배재만 형 제의 사망사건에 관한 진술이다. “숙부 배재만이 좌익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함평경찰서 기동대가 잡으러 마을에 자주 왔 었습니다. 숙부의 활동과 관련하여 아버지 형제 중 두 분만 돌아가셨지 다른 분들은 무사하 121) 백대윤의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사건이 일어난 1951.2.20.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손불면-989 122) 참고인 백충인 진술조서(2009.6.9.) 123) 신청인 백두인 진술조서(2008.5.20.) 124) 참고인 백영해 진술조서(2009.6.9.) 125) 신청인 배호묵 진술조서(2008.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