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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87 마) 학산리 학산리는 해안가 마을로 영광군 염산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좌우익 간의 갈등으로 군경의 함평진주 후 함평의 다른 지역보다 인명피해가 컸다. 학산리에서는 1951년 2월 19 일 군유산작전이 시작되자 주민 중 일부가 경찰을 피하여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학산리 복학마을 김재수(다-4276)의 숙부 김동운과 사촌형 김정연은 군유산으로 피난 을 갔다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김재수의 진술이다. “저는 어머니만 계셔서 군유산작전 때는 집안에 굴을 파고 집에 숨어있었습니다. 셋째숙 부 김동운은 군유산 중턱까지 올라갔으나 경찰이 있어 사기마을까지 내려왔는데, 그곳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분은 보도연맹원으로 나산면 넙태에서 총을 8방이나 맞고도 생환하였습니다. 사촌형은 군유산작전 뒤 마을에 들어온 경찰이 마을을 포위하고 총을 쏘 니 도망하다 총을 맞았습니다.” 114) 김동운과 김정연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복학마을 주민으로서 군유산작전 때 사기마을 까지 피난을 갔던 참고인 김홍용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저는 북성리 사기마을까지 피난을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김동운은 아저씨뻘입니다. 그 분은 보도연맹원으로 나산면 넙태까지 끌려갔다가 살아오셨는데 그날 돌아가셨습니다. 김 동운에 대한 사망소식은 궁산리 묘동마을 김상길이 말해주었습니다. 시신은 며칠 뒤 선산 에 모셨습니다. 또 김정연은 형님뻘인데, 인공 때 좌익 쪽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래서 경 찰이 들어왔을 때 도망가다 경찰의 총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115) 학산리 해은마을 김금례(다-5099)의 숙부 김연옥은 군유산으로 피난을 가던 중 북성리 사기마을 뒤 군유산 골짜기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여 현장에 매장하였다. 이 사건에 관하여 김금례는 “숙부는 인민군 점령기에 젊은 사람들과 휩쓸려 다녔는데 ‘경찰이 작전 을 나오면 군유산으로 피난을 가면 된다’는 말만 믿고 피난을 갔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 었다고 진술하였다. 116) 그러나 참고인 배정문은 “김연옥의 형님 김연섭은 복학분주소에 서 대원으로 활동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은 배정문의 진술이다. “김연옥은 당시 30대로 농사짓고 살았는데 김연옥의 형님 김연섭이 인민군 점령기 복학 114) 신청인 김재수 진술조서(2008.5.9.) 115) 참고인 김홍용 진술조서(2009.6.10) 116) 신청인 김금례 진술조서(2008.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