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page

제 7 권 84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사건 당시 형수님의 오빠와 동생이 수습하였습니다.” 100) 채봉수의 형수 김복순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같은 마을 김재원은 “채봉수의 형수는 군 유산에서 잡혀 2, 3일 후 대전리 경찰고지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 술하였다. 101) 또 김복순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이귀술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채봉수의 형수는 군유산작전이 있던 날 군유산에서 연행되어 손불면 대전리 산당고랑 의 경찰고지에서 사망하여 시신을 수습하여 왔습니다.” 102) 장동마을 김영남(다-4566)의 아버지 김수복과 어머니 박운득도 1951년 2월 19일 아침 일찍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김영남은 아버지가 군유산에서 사망하였다는 것은 경찰의 지시로 짐을 지고 경찰을 따라갔던 이필범으로부터 들었고, 어머니의 사망사실은 손불지 서로 연행되었던 주민으로부터 들었다. 다음은 김영남의 진술이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 피난을 갔는데 경찰이 사방에서 총을 쏘자 신광 송사리 사간동에서 숨어 있다가 밤에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군유산작전 뒤 경찰이 시신을 수습하라고 하여 아 버지 시신은 숙부가 군유산에서 수습하였고 어머니 시신은 손불 대전리 경찰고지 부근 산 당고랑에서 수습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군유산 정상에서 돌아가셨다는 것과 어머니가 경찰 에게 연행되어 산당고라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이필범이 이야기를 해주어서 알게 되었습 니다.” 103) 또 같은 마을 거주 참고인 이귀술도 “김영남의 부모님 시신은 경찰이 수습하라고 하여 아버지 시신은 숙부가 군유산에서, 어머니 시신은 손불면 대전리 경찰고지에서 수습하였 다”고 진술하였다. 104) 장동마을 이귀술(다-4567)의 아버지 이상용도 군유산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이귀 술은 “형 이귀만이 ‘좌익에 협조’하여 신광 수복소식을 듣고 군유산으로 갔고, 가족도 북 성리 사기에서 생활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형님이 분주소에서 일을 하였던 것 때문에 가족은 작전이전에 북성리로 갔습니다. 군유 100) 신청인 채봉수 진술조서(2008.5.21.) 101) 신청인 채봉수 진술조서(2008.5.21.); 김재원에게 확인하였으나 김복순의 사망 장소는 손불면 대전리 수 문 경찰고지였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김재원 통화보고(2009.8.27.) 102) 참고인 이귀술 진술조서(2009.5.28.) 103) 신청인 김영남 진술조서(2008.5.21.) 104) 참고인 이귀술 진술조서(2009.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