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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82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과 김문호의 형 김영성입니다.” 92) 유록마을 남수남(다-4277)의 아버지 남삼자도 군유산에서 사망하였다. 신청인 남수남 은 “당시 5살이어서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고종사촌 오빠 이봉장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93) 사건 당시 21세였으며 시신을 수습하였던 참고인 이봉장은 남삼자의 사망사실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남삼자는 외숙인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은 사건 당일 오후 외종사촌동생 남수남에 게서 들었습니다. 그날 남수남이 저에게 와서 “아버지가 나를 업고 가다가 총에 맞아 죽었 다”고 말하였습니다. 남수남은 현장에서 마을까지 혼자서 왔고 장소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남삼자의 시신은 며칠이 지나서 수습하였습니다.” 94) 청등마을 김영석(다-4940)의 아버지 김석현은 군유산작전 전날 저녁 군유산으로 갔다. 다음날 경찰의 작전이 끝나자 함께 피난 나온 주민들이 김석현에게 군유산에서 내려가자 고 하였지만 산에 남아 있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승선마을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 다. 당시 승선마을은 경찰이 군유산 정상에서 연행한 민간인과 피난행렬에서 좌익혐의자 들을 선별하여 집단으로 살해하였던 곳이다. 김석현의 시신은 산남리 수연마을 황두채가 수습하였다. 95) 다음은 황두채의 진술이다. “김석현은 동네에서 애현으로 불렀습니다. 그분의 형님과 한 동네에 살았습니다. 그 형님 이 작전 다음날인 정월 보름날 저에게 시신을 가져오라고 하여 가져다주었습니다. 북성리 승선마을 사거리에서 제가 시신을 찾아왔는데 시신을 찾으러 가서보니 그곳에 시신이 엄청 많이 있었습니다.” 96) 신청인 김영석(정윤자), 참고인 황두채의 진술과 황두채가 김석현의 시신을 수습한 곳 이 경찰에게 연행된 피난민들이 집단 살해된 북성리 승선마을 앞이었다는 진술로 볼 때 김석현은 다른 피난민과 함께 경찰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92) 참고인 김영국 진술조서(2008.5.23.) 93) 신청인 남수남 진술조서(2008.6.24.) 94) 참고인 이봉장 진술조서(2009.3.19.) 95) 신청인 김영석(정윤자) 진술조서(2008.5.21.) 96) 참고인 황두채 진술조서(2009.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