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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81 김영성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산남리 김병선은 “종형 김영남이 북성리 승선마을 앞 사 거리에서 경찰에게 잡혀 있었는데 이때 ‘김영성도 경찰에게 잡혀 총살대상자 쪽에 분류 되어 있는 것을 보았으나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종형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 하였다. 다음은 참고인 김병선의 진술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 종형 김영남으로부터 들었는데, 김영성은 종형과 함께 북성리 승선에 서 경찰에 잡혀 있었는데 경찰이 종형에게는 “공중에 총을 쏠 테니 그러면 너는 엎드려라” 고 하여 종형은 살아나 마을로 내려왔는데 김영성은 경찰에 선별되어 있는 것은 보았으나 총살여부는 목격하지 못하였답니다. 종형은 전쟁이 끝난 20여 년 뒤 사망하였습니다.” 89) 김영성의 당질 김형수는 “당숙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하였지만 제사는 정월 13일에 지 내고 있다. 당숙은 함평농업실습학교를 졸업하고 전쟁 전에는 군청에 다녔는데 군유산작 전 무렵에는 집에 있었다. 그날 형님과 김소선, 김영백 등은 승선동에서 돌아가시고 김동 현과 김영남은 살아왔다”고 진술하였다. 90) 같은 마을 김병선의 가족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김병선의 누나 김소선은 군유산 중턱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총격을 받았다. 김병선의 아버지는 총탄이 발 뒤 꿈치를 스쳤지만 무사하였고 김소선은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시신은 2, 3일 후 부모가 수 습하였다. “그날 어머니와 형님을 제외하고 모두 군유산으로 갔습니다. 그때 보았는데 손불 쪽은 경 찰이 지키고만 있었는데, 영광 쪽은 불을 지르고 총을 쏘며 쫓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 불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와 누나는 같이 있다가 누나는 총을 맞아 사망하였고, 아버지 는 총알이 발뒤꿈치를 약간 스친 상태에서 죽어가는 누나를 보시기만 하였다고 합니다.” 91) 당시 산남리 용흥마을에 살았던 참고인 김영국은 그 당시 마을의 상황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진술하였다. “김용남의 조부 김영섭과 김문호의 형인 김영성은 저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그 두 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을에 있으면 죽으니까 군유산으로 피신가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당시 형님과 함께 군유산에서 사망한 사람은 김병선의 누나 김소순 89) 참고인 김병선 통화보고(2009.10.9.) 90) 참고인 김형수 진술조서(2009.6.11.) 91) 참고인 김병선 진술조서(2008.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