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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79 마을 문건식(다-4431)의 조부 문재동(1908년생)도 주민들과 함께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 다음은 신청인 문건식이 부모로부터 들었던 조부 문재동에 관한 진술이다. “1951년 음력 1월 14일 마을에 경찰이 총격을 가하며 진입하자 총성을 듣고 할아버지 등 동네 분들은 군유산으로 피신하였는데 할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할아 버지께서 군유산에서 경찰에게 잡혀 총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부터 시신을 찾으 려고 군유산 일대를 수색하였지만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80) 사건 당일 주민 이갑산과 백동인은 “군유산 중턱에서 문재동의 아들 문태호(당시 16 세) 81)를 만났는데 문태호에게서 ‘아버지가 경찰의 총에 사망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 술하였다. 82) 문재동의 제적등본에는 ‘1951년 2월 19일 본적지에서 사망’으로 기재되어 있 었다. 같은 마을 김일환(다-4428)의 백부 김서현은 군유산의 능선인 양재리 상막재에서 경찰 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김서현은 ‘경찰이 작전을 들어오면 피난을 가야한다’는 말을 들었 던 터라 경찰의 총성이 들리자 주민들과 피난을 갔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제외한 동네 분들이 대부분 군유산 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 분 들 중 서삼조, 이갑산 등은 살아오셨습니다. 이갑산은 현재 생존해 있는데, 서삼조는 15년 전에 사망하였습니다. 이갑산은 바위틈에 숨어있다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군유산작전 뒤에 큰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자 할아버지가 시신을 찾아 임시로 매장하였는데 나중에 가서 보 니 누군가가 파헤쳐 시신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83) 당시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가 살아 돌아온 같은 마을 참고인 이갑산과 백동인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1951년 2월 19일 아침 북풍마을에서도 아침밥을 먹자마자 월천리를 경유하여 군유산 방 향인 사기마을로 피난을 갔습니다. 우리 마을 김서현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상막재 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여 시신을 수습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날 경찰이 총을 쏘고 들어오니 모두들 정신없이 군유산만 바라보고 갔습니다. 마을에서 돌아가신 분은 김일환의 80) 신청인 문건식 진술조서(2008.6.25.) 81) “아버지 문태호는 제적등본에는 이름이 문제연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동네에서는 문태호라고 불렀습니다.” 신청인 문건식 진술조서(2008.6.25.) 82) 참고인 이갑산․백동인 진술조서(2009.3.19.) 83) 신청인 김일환 진술조서(2008.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