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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77 양재리 장재동과 인접한 영광 염산 오동리 복룡 주민들도 경찰의 진입이 시작되자 군 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장길석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나갔다가 평암골에서 경찰의 총격 을 받았다. 다음은 아들 장성수(미신청)의 진술이다. “사건 당일 경찰이 복룡마을에 들어오자 아버지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고 들었습니 다. 군유산에 올라갔을 때 경찰이 올라오자 월암산과 영광방향인 평암골로 피난하였는데, 아버지는 평암골로 가시다가 경찰의 총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월암산으로 가셨던 분들은 다치지 않았는데, 평암골에서는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72) 사건 당시 장길석과 함께 복룡마을에 살았던 장길석의 동생 장갑순은 장길석과 함께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장갑순의 진술이다. “저도 그날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중턱까지 밖에 못 갔습니다. 경찰이 총을 쏘자 중 턱에서 영광 군남면 대덕으로 갔다가 그날 밤 돌아왔습니다. 형님과는 집에서는 같이 나갔 으나 바로 헤어졌습니다. 형님이 2,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아버지께서 찾으러 다니 시다가 평암골에서 시신을 찾아 와 선산에 모셨습니다. 형님과 함께 돌아가신 분이 강두원 의 형제인데 그 분 가족들과 함께 가서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73) 다) 산남리 산남리는 함평읍 주포지서와 면소재지의 중간에 있는 마을로 산남리에는 15개의 자연 마을이 있는데, 1951년 2월 19일 이전에는 마을의 청․장년이 지방좌익의 지시로 경찰의 진입에 대비하여 보초를 선 경우가 많아 군유산작전 때는 경찰에게 선별되어 북성리 승 선동에서 총살된 경우가 많았다. 산남리 내감마을 박선자(다-4419)의 아버지 박태종도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가 경찰이 손 을 들고 내려오라고 하여 내려왔는데 북성리 승선동74) 부근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71) 참고인 서일섭 진술조서(2009.6.12.) 72) 참고인 장성수 진술조서(2008.6.10.); 누구에게 들었는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는 경찰이 끌고 가려하 였으나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다가 총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73) 참고인 장갑순 진술조서(2009.5.29.) 74) 북성리 승선동은 군유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며, 승선마을 → 월천리 어전 → 손불면 소재지와 승선마을 →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해안마을 → 신광면 소재지가 나뉘는 곳으로 사건 당시 이곳에서 경찰이 피난 민을 선별하여 총살 후 확인사살까지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이 결정서 180쪽 <표 1> 사건지역도 손불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