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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76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살해되었다. 다음은 박관규의 진술이다. “숙부의 처남이 경찰이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숙부한테 피신을 왔고 아버지는 이 분들 을 살리기 위해 인민군에게 협조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때문에 군유산작전 때 피신하였습 니다. 3일 뒤 아버지는 경찰에 잡혀 손불지서로 연행되었고, 먼저 연행되었던 어머니가 이를 목격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경찰이 선별한 14명과 함께 포박당한 채 한청사무소 끌려갔고, 어머니가 다음날 산당고랑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68) 박윤휴의 사촌으로 사건 당시 마을에 있었던 참고인 박노진은 사촌형 박윤휴의 사망사 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박윤휴는 동네에서는 박노연이라고 불렀습니다. 군유산작전이 끝난 며칠 뒤 한청대원 6, 7명이 집에 와서 산당고랑으로 끌고 가 죽였습니다. 동네에서 끌려간 사람은 없으나 산당 고랑으로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시신 10여 구가 묶여 있어서 끈을 자르고 시신을 찾아 와 수습하였다고 합니다.” 69) 영광 군서면에 살았던 서승일(다-8848)의 아버지 서균선은, 동생이 국군에 입대하여 ‘반동가족’으로 몰려 영광 백수면으로 피신을 하였다. 서균선은 그곳에서 소를 빼앗기는 등 고통을 겪자, 손불면 월천리 일공구마을 진외가로 피신하였다. 서균선은 1951년 2월 19일 군유산작전 때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학산리 지호마을로 내려왔는데 경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다음은 서승일의 진술이다. “군유산작전 이전에 다들 ‘살려면 군유산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당일 일찌감치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고 어머니와 저는 사기마을에서 경찰에게 잡혔다가 다 음날 풀려나 일공구로 갔는데, 아버지와 삼촌은 지호마을에서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삼촌 은 도망쳤지만 아버지는 경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시신은 이름이 선동인 분이 일공구에 살았는데 이 분이 지호에 갔다 오다가 보았다고 말해주어 수습하였습니다.” 70) 서균선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사촌동생인 참고인 서일섭은 “서균선은 영광 군서면 송학리에 살았는데 백수면 하사리를 거쳐 함평 손불면 월천리 일공구 마을로 피난을 가셨다. 서균선이 경찰에게 죽었다는 것은 그 사건 직후 그분의 부인을 통하여 알았다”고 진술하였다. 71) 68) 신청인 박관규 진술조서(2008.5.19) 69) 참고인 박노진 진술조서(2009.5.28.) 70) 신고인 서승일 진술조서(200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