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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75 산으로 피난을 갔다. 군유산 중턱에 도착한 양삼자 형제는 굴속에 숨어 있었는데 뒤따라 온 경찰이 손을 들고 나오라고 하였고, 손을 들고 나오던 형 양칠석(당시 21세)은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양칠석의 사망사실에 대한 양삼자의 진술이다. “형님이 돌아가신 뒤, 경찰이 군유산 정상으로 올라가라고 하여 저도 올라갔습니다. 군유 산 정상에서 경찰은 젊은 사람 중에서도 행색이 이상한 사람은 골라내어 다른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뒤 내려가라고 하여 저는 북성리 승선마을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형님 양칠석의 시신은 다음날 저와 집안 어른들이 현장에 가서 수습하여 묻었습니다.” 63) 양칠석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양삼자와 함께 군유산에 피난을 갔던 동생 양삼두의 진술 이다. “어전마을에서 북성리 승선․차경․은행동을 지나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때까지는 칠석, 삼자형님과 제가 함께 있었습니다. 승선마을 앞으로 내려올 때 하천에 시신이 즐비한 것을 보았는데 대부분 25세 전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서 나온 피가 하천에 붉게 흐르고 있었고, 그 분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있어서 하천이 하얗게 보였습니다.” 64) 신기마을 최화님(다-4281)의 시숙부 이판술, 조연신(다-4282)의 형 조성신, 전내상 65) (다-4283)의 형 전연상, 전상범(다-4284)의 삼촌 전홍범․전홍섭은 1951년 2월 19일 주민 들과 함께 군유산으로 피난을 나갔다. 신청인 조연신은 “형님 조성신과 전연상, 이판술, 전홍범․전홍섭 형제, 조성순66) 등이 함께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군유산 정상까지는 같이 올라갔지만 정상에서 경찰이 총을 쏘자 모두 흩어졌고 조성순만 살아 돌아와서 조 성순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67) 농장마을 박관규(다-4563)의 아버지 박윤휴는 인민군에게 협조하였던 것 때문에 1951 년 2월 19일 경찰의 작전이 시작될 무렵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박윤휴는 3일 뒤인 2월 22일 경찰에게 잡혀 군유산 정상으로 왔다가 다른 14명과 함께 묶인 채 ‘산당고랑’에서 63) 신청인 양삼자 진술조서(2008.5.21.) 64) 참고인 양삼두 진술조서(2009.5.27) 65) 신청인 전내상은 자신의 형 전연상이 군유산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대동면에서 살해되었다고 진술하였으 나 다른 신청인들은 5명 모두가 군유산에서 불갑산으로 연행되어 그곳에서 사망하였으며 시신은 찾지 못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66) 신청인 조연신은 주민 조성순이 이판술, 조성신, 전연상, 전홍범․전홍섭 형제 등과 함께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가 진실규명대상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전문 진술이 있어 조성순의 생존여부를 확인하였으나 2006.4.22. 사망하여 조성순의 진술은 청취하지 못하였다. 조사4팀-973 67) 신청인 조연신 진술조서(2008.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