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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73 조복례의 딸이고 장길선의 질녀인 신청인 장여비는 삼촌의 사망에 관하여 어머니로부 터 들었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삼촌 장길선의 사망에 관하여는 같은 날 돌아가신 황장술의 부인인 조복례로부터 들었 는데 그 분은 저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 조복례가 삼촌 장길선이 돌아가신 날이 1951년 음 력 1월 17일이라고 알려주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건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 장정기와 재 혼을 하였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삼촌과 황장술의 사망사실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55) 황장술 장길선과 같은 마을 거주 참고인 강해선은 “황장술과 장길선은 군유산작전 때 함 평경찰서 기동대에게 사망하였다. 무안, 해제의 지방좌익들이 사기마을에 모여 있다가 경찰 이 들어온다고 하니까 모두 군유산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경찰이 군유산을 둘러싸고 그곳 에 있는 피난민까지도 빨치산 등 좌익세력이라고 생각하고 잡아 죽였다”고 진술하였다. 56) 사기마을 이봉장(다-4273)의 형 이봉열은 군유산작전이 끝나고 2월 27일 대전리 수문 에 소개 나왔다가 손불지서에 갔는데 지서에서 살해되었다. 다음은 신청인 이봉장의 진 술이다. “군유산작전 뒤 형님은 대전리 수문에 소개 나와 있었습니다. 경찰이 북성리에서 소개 나온 모문기를 찾았는데, 모문기가 형님에게 같이 가자고 하여 둘이 지서에 갔었습니다. 10 여 일 지나서 대동면 향교리 뒷산에서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형님은 반란군이 위협하여 어쩔 수 없이 보초를 섰습니다. 시신은 어머니와 같이 수습하였는데 오른손 엄지의 흉터를 보고 확인하였습니다.” 57) 이봉열이 모문기와 같이 손불지서에 갔다가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사건 발생 당시 산 남리 대성마을에 살았던 참고인 임유택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저는 사건이 났을 때 산남리 2구 대성마을에 살았습니다. 이봉열은 북성리 사기마을에 살았는데 이때는 소개 명령에 산남리로 나와 살고 있었습니다. 이봉열의 고모가 우리 동네 에 시집을 왔습니다. 이봉열의 시신은 가족이 수습하여 안장하였습니다.” 58) 승선마을 박종두(다-10814)의 형 박종인은 경찰이 진주하기 전에 좌익의 강요에 의하 55) 신청인 장여비 진술조서(2008.5.21.) 56) 참고인 강해선 진술녹취(2009.6.18) 57) 신청인 이봉장 진술조서(2008.6.25.) 58) 참고인 임유택 진술조서(200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