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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72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 손불면50) 가) 북성리 사기마을 이재표(다-4418)의 장형 이재화는 마을에 있던 좌익의 권유에 동생 이재표 등과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이재표는 오후 1시경 경찰이 군유산 봉우리를 점령하자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중턱에서 마을로 내려왔다. 동생과 헤어져 마을로 내려오던 이재 화는 사기마을 뒤에 있던 경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재화의 시신은 2, 3일 뒤 가 족이 수습하였다. 51) 이재화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박병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재화는 사망할 때가 21살로 저보다 5살 많았습니다. 그분은 인민군 점령기에 특별한 활 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재표의 형제가 6형제였는데 형제가 모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가 이재화만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시신은 가족들이 찾아 수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2) 사기마을 조복례(다-8488)의 남편 황장술과 장여비53)(다-8489)의 삼촌 장길선은 군유 산작전이 끝난 4일 뒤 경찰에 연행되어 살해되었다. 황장술과 장길선은 1951년 2월 19일 새벽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정상에서 경찰에게 잡혔다. 황장술과 장길선은 군유산에 서 손불지서로 연행 후 석방되었으나 월천리 어전에서 다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집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 다음은 신청인 조복례의 진술이다. “남편은 2월 19일(음력 1월 14일) 어전마을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아 집에서 호박 속을 바르면서 치료 중이었는데 3일 후인 2월 22일 오후 경찰이 마당으로 나오라고 하여 죽였습 니다. 경찰의 명령에 제가 남편과 함께 나갔는데 남편은 나가자마자 경찰이 쏜 총에 맞았습 니다. 그날 다른 마을 분들까지 경찰에게 잡혀 온데다 사기마을이나 어전마을이 군유산에 올라가는 통로이다 보니 경찰에게 끌려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54) 50) 손불면은 함평군의 북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함평읍, 신광면, 영광군 군남․염산면과 접하고 있다. 손불면은 인접한 해제반도를 통하여 무안, 신안군과 연결되어 있어 좌익세력의 저항이 지속되었다. 때문 에 신광면이 1950년 11월 초부터 계천리에 경찰고지를 설치하고 주변 지역 치안확보에 나선 것과 달리 손 불면은 군유산작전이 끝난 뒤에야 치안기능을 회복하였다. 51) 신청인 이재표 진술조서(2008.5.8.) 52) 참고인 박병규 진술조서(2009.5.26.) 53) 장여비는 조복례가 남편 황장술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후 재가하여 낳은 딸이다. 신청인 장여비 진술조 서(2008.5.21.) 54) 신청인 조복례 진술조서(2008.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