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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68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유산 인근의 접근이 차단되어 경찰은 마을 이장이나 ‘밀대’를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였다. 이에 대하여 함평지역 참전경찰 정금용은 “경찰이나 면사무소에서는 마을 이장이나 경찰 이 심어놓은 ‘밀대’를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는데 이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39) 군유산의 무장빨치산 규모에 대해서 송사리 주민 김채섭은 당일 무장빨치산 10명 정도 가 영광군 염산면 쪽으로 도주하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40) 또 송사리 삼천동 주민 주육손은 “군인가족이어서 오전 11시경 경찰을 따라 군유산에 올라왔는데 그때 빨 치산은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41) 주민 김채섭과 주육손의 진술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당시 ‘적 무장 80명’은 그 규모에 의문이 든다. 이날 신광면 계천리 경찰고지에서 출발한 함평경찰서 기동대는, 신광면 함정리에서 군 유산에 총격을 가하면서 보여리를 거쳐 군유산으로 올라갔고, 함평읍 주포에서 출발한 함평경찰서 기동대도 손불면 소재지인 대전리, 월천리를 지나면서 군유산에 공격을 가하 였다. 또 영광군 군남면 방향에서 올라왔던 영광경찰서 기동대는 영광군 염산면 방향으로 퇴 로를 열어주며 군유산에 진출하였다. 사건 당시 신광면 송사리 사간동 김채섭과 손불면 산내리 내감마을 김남수의 진술이다. “경찰이 새벽 5시경 함정리 달봉산에서 총을 쏘면서 들어와 송사리 송계 뒷산을 거쳐 동 암태 봉우리까지 진격하였습니다. 오전 10시경에는 동암태에서 군유산에 기관총 공격을 하 였습니다. 저는 새벽에 총성을 듣고 삼천동 방향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군유산에 올라가면 서 사간동 끄트머리에 있는 밭에 총탄이 떨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42) “주포 방향에서 경찰의 총격이 시작되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손불면 북성리 사 기마을 방향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곳에서 경찰을 만났습니다. 경찰이 군유산 정상으로 올라 가라고 하여 올라갔다가 면소재지로 내려와서 주먹밥을 먹고 다음날 집에 돌아왔습니다. 군 유산에 도착하였을 때는 영광, 신광, 주포 쪽에서 밀려온 경찰로 군유산이 꽉 찼습니다.” 43) 39) 참고인 정금용 진술녹취(2007.12.6.) 40) “군유산작전 때 군유산에서 무장빨치산을 보았던 것은 동암태 부근이었는데 동암태 봉우리 100여 미터 앞 에서 10명 정도의 무장빨치산이 지나갔는데 경찰이 쏜 총에 그 사람들 중 1명이 총을 맞고 멈칫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 뒤 그 빨치산은 일어나더니 일행을 따라 영광 염산면 방향으로 도주하였습니다.” 참고인 김채섭 진술조서(2008.8.21.) 41) 참고인 주육손 통화보고(2009.10.7.) 42) 참고인 김채섭 진술조서(2008.8.21.) 43) 참고인 김남수 진술조서(20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