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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55 연 번 관련 사건 성명 (당시 나이) 진술일 진술장소 진술형태 주요 진술 69 8848 서일섭 (25) 2009 . 6 . 12 . 함평읍 진술조서 서균선은 영광군 군서면 송학리에 살았는데 빨치산을 피하여 처가인 손불면 월천리로 피난을 갔음.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가 학산리 지호까지 도망을 하여 그곳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음. 70 6297 나복동 (15) 2009 . 6 . 13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노가임은 올케이며 저의 조카 나병희의 어머니인데 죽장리 수 철마을에 살았음. 오빠 나정주는 보도연맹원으로 1950년 7월 23일 나산면 넙태에서 사망하였음. 죽장리 장동 수말댁이 말해 주어 올케 노가임의 사망사실을 알았고 시신을 수습하였음. 71 4419 김남수 (17) 2009 . 6 . 13 . 북성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박선자의 아버지 박태종은 산남리 내감마을에 살았음. 박태종 은 군유산작전 때 군유산으로 피난을 나왔다가 경찰에 연행되 어 승선마을 네거리에서 경찰의 선별 후 총격에 사망하였음. 72 8488, 8489 강해선 (21) 2009 . 6 . 18 . 광주 상무병원 진술녹취 황장술, 장길선과는 손불면 북성리 사기마을 한 동네에 살았음. 그 사람들은 함평경찰서 기동대들이 총살하였음. 당시 북성리 에는 지방좌익이 모여 있어 기동대가 군유산작전을 하고 난 뒤 북성리에 있던 사람들을 집결시키고 선별하여 총살하였음. 73 3619 박화선 (27) 2009 . 6 . 16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김길호의 아버지 김동열은 월야면 외치리 외치재에서 경찰에 게 죽었는데 전날 경찰이 연행하였음. 반란군에게 밥을 해주었 다고 김동열, 김두원, 장싹쇄아 본인 등 네 분이 월야지서로 연행되어 시어머니의 동생이 의경이어서 본인만 살아오고 세 분은 사망하였음. 74 5611, 5615 황봉채 (14) 2009 . 6 . 16 . 용정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양윤초가 경찰에게 불려나가 살해되었을 때가 14살이었는데 늦가을 한밤중 총소리가 들렸고, 다음날 양윤초와 경찰이 연행 하여 온 다른 동네 2명이 마을 앞에서 총살된 것을 알았음. 장성환은 1년 뒤 경찰에 연행되어 죽은 것을 알고 있음. 장성환 은 예덕리 망가촌 처가에 있었는데 방아를 찧던 중 월야지서 경찰에 연행되어 사망하였음. 75 5607, 5608, 6335, 6744 정길진 (26) 2009 . 6 . 16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정재두는 백야 큰마을에서 살았는데 1951년 대보름 작전이후 정판근, 장동섭, 김남수 등과 함께 월야지서 경찰 김○○에게 연행되어 면소재지로 나가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얼마 뒤 소재 지 방향에서 총성을 들었음. 정재인은 월야지서 의경이었는데 함평경찰서 요구로 경찰서에 출두하였다가 돌아오지 않고 나 중에 함평읍에서 시신을 수습하였음. 76 10217 김동일 (23) 2009 . 6 . 19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양정리 방축에 살았는데 사건이 일어난 날 밤에 이영기의 형 이동준과 한 좌석에 있었음. 청년 10여 명이 모여 있었는데 순찰 중인 경찰이 인기척을 냈고 인기척에 놀란 이동준이 도망 하자 경찰이 총격을 가하여 사망하였음. 77 8080 노덕례 (18) 2009 . 9 . 10 . 진실화해 위원회 진술조서 결혼하여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김광숙이 죽었는데 집안 아저씨 뻘임. 김광숙을 마을에서 김홍만으로 불렸음. 김홍만은 경찰이 빨갱이라고 연행하여 산 밑에서 살해하였는데 그때가 밀을 벨 무렵이었음. 78 3921 윤기병 (20) 2008 . 8 . 22 . 함평군청 진술조서 이계병의 다른 이름은 이계춘이고 해보면 운곡에 살았음. 당시 에는 용천사에서 문장을 가기 위해서는 모평 앞을 지나야 하는 데 그 길목인 쌍구룡 주막에 있으면서 이계병이 연행되어 총살 되는 것을 목격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