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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54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연 번 관련 사건 성명 (당시 나이) 진술일 진술장소 진술형태 주요 진술 59 4274 배귀태 (7) 2009 . 6 . 9 . 학산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배재고와 배재만은 재당숙인데 배재고는 동생 좌익 활동을 하 였던 배재만 때문에 고생하였음. 배재고가 사망한 장소는 모르 고 , 배재만은 해은마을 앞 바다에서 경찰의 추격에 도망을 가 다 총격에 사망하였음. 60 10812 백충인 (20) 2009 . 6 . 9 . 학산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백판준은 40대 후반으로 나이가 많아 군유산작전이 있었던 1951년 2월 19일 피난을 가지 않고 마을에 있었음. 다음날 마 을에 들어온 경찰이 주민들에게 밥을 달라고 하여 밥을 준비하 였는데 동작이 느리다고 총살하였음. 61 4417, 4989 백영해 (16) 2009 . 6 . 9 . 학산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백두인과는 5촌인데 형 백병인과 어머니가 돌아가셨음. 백두 인의 어머니는 사망한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군유산작전이 끝난 다음날 경찰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살해하였음. 형 백병인은 배재만과 함께 활동하였던 김삼섭과 함께 연행되어 5, 6일 뒤 총살되었음. 62 4684 김재수 (18) 2009 . 6 . 10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김장수는 6촌 형님으로서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농사를 짓고 있었음. 군유산작전이 끝난 뒤 경찰이 마을을 수색하면서 청년 들을 연행하여 총살하였음. 김장수도 마을 앞 비석거리로 불려 갔는데 경찰이 들어가라고 하고 총살하였음. 63 4276 김홍용 (16) 2009 . 6 . 10 . 김재수 자택 진술조서 김동운은 집안 아저씨뻘임. 1950년 7월 국민보도연맹 사건 때 나산면 넙태까지 갔다가 총을 8발이나 맞고 살아왔는데 다음해 2월 군유산작전 때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음. 김정연 은 전쟁이전 좌익 활동을 하였는데 경찰이 온다고 하여 도망하 다 총에 맞았음. 64 5099, 4688, 4684, 4274 배정문 (18) 2009 . 6 . 10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김금례의 숙부 김연옥은 남의집살이를 하였던 분으로 피난을 갔다가 경찰에게 총살되었는데 시신 수습은 못하였음. 김요환 의 아버지 김천수는 본인 집에 비트를 파놓고 숨어 있었는데 경찰에게 연행되어 행방을 모름. 김장수는 군유산 작전 직후 경찰의 총격에 부상을 입고 도망을 하여 치료 중 경찰에 연행되 어 총살됨. 또 배재고는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도 동생 배재만 때문에 경찰에 연행되었음. 65 4682, 5101 배정문 (18) 2009 . 6 . 10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배동원은 동네에서 배종수로 불렀음. 배종수는 1949년 여름 김 복만의 숙부 김병호와 함께 경찰에 연행되어 월천리 농장마을 뒤 밭에서 살해되었음. 시신은 배용길과 김갑조가 수습하였음. 66 6570, 10848, 10850 배정문 (18) 2009 . 6 . 10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배열교는 동네에서는 배권일, 배공리는 배권철로 불렀음. 배권 일은 금곡, 배권철과 사촌형은 해은에 살았음. 배권철은 경찰 이 면사무소로 연행하여 총살함. 배권일은 동생이 분주소장을 하였던 것 때문에 경찰에 총살됨. 67 4940 황두채 (21) 2009 . 6 . 11 . 산남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김영석의 부 김석현은 동네에서 애현으로 불렀음. 김애현의 형이 한 동네에서 살았는데 군유산작전 다음날 시신을 가져다 달라고 하여 군유산에서 시신을 져다 주었음. 68 4425 박예구 (9) 2009 . 6 . 11 . 산남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박래길의 부 박진구는 4촌간이었으나 산남리 강석에 살았음. 음력 11월 3일이 할아버지 기일이라 제사를 지내러 왔다가 다 음날 경찰이 마을에 진주하는 것을 보고 놀라 도망하다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