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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53 연 번 관련 사건 성명 (당시 나이) 진술일 진술장소 진술형태 주요 진술 51 4275, 4286, 4279, 4289, 10815 모학기 (22) 2009 . 5 . 27 . 북성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1950년 12월 12일 경찰이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왔는데 양재리 장재동 냇가에 있다가 경찰에 잡혀 신광 계천리 경찰고지로 갔음. 그날 사망하신 분은 모종두의 숙부 모양선, 모종채의 부 모일기, 모성만의 어머니와 누나, 조남승의 사촌형 조상술, 모종두의 외숙 김복현, 모종군의 외숙 염양수 등임. 모재원의 숙부 모종술은 경찰을 피해 다니다 연행되어 사망하였고 모근 배의 형 모용배는 경찰 진주이전 함평읍으로 시계를 고치러 가다 연행되어 사망하였음. 52 10816 모재원 (15) 2009 . 5 . 27 . 북성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상막재 사건이 일어난 날 상막재로 가지 않고 친구들과 양재리 뒷산으로 피난 갔음. 경찰이 유가족과 함께 마을에 들어와 마 을에 불을 질렀음. 조상술도 주민들과 함께 상막재로 피난 갔 다가 사망하여 시신을 수습하였음. 53 4563 박노진 (31) 2009 . 5 . 28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박관규의 부 박윤휴는 사촌형님인데 동네에서는 박노연으로 불렀음. 군유산작전이 끝나고 한청대원 6, 7명이 박윤휴의 집 에 들어와 연행하여 대전리 산당고랑 손불 경찰고지 부근에서 죽였음. 54 4565, 4566, 5098 이귀술 (13) 2009 . 5 . 28 . 죽장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이풍식의 어머니와 작은형 이창식은 군유산작전이 있던 날 피 난을 하였다가 경찰에게 연행되어 대전리 손불 경찰고지에서 총살되었고, 큰형 이창식은 군유산에 피난 갔으나 그 후 집으 로 돌아오지 않았음. 채봉수의 형수 김복순의 시신은 대전리 경찰고지에서 수습하였음. 김영남의 아버지는 군유산에서 사 망하여 시신을 수습하여 왔고, 어머니는 대전리 경찰고지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여 시신을 수습하였음. 55 3640, 4562 이재연 (21) 2009 . 5 . 28 . 유대홍 자택 진술조서 윤수봉의 큰아버지가 이 동네에 살았는데 윤수봉의 어머니가 출산을 하기 위해 신광면 송사리 해안마을에 갔다가 1950년 12월 12일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고 들었음. 유대익은 신광 계천리 경찰고지에 있을 때 한청대원들이 연행하여 온 것 보았 고 , 다음날 원산리 부근에서 경찰이 죽였다는 이야기를 다른 한청대원으로부터 들었음. 56 3639 유대홍 (13) 2009 . 5 . 28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돌아가신 김남보는 당시 50세 정도였는데 한 동네에 살았음. 김남보는 1950년 12월 초 처음 진주한 경찰과 대창부대를 보 고 도망을 하였고 도망가는 김남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총격을 가하여 사망하였음. 57 7794 홍연례 (20) 2009 . 5 . 29 . 참고인 자택 진술조서 17살 때 이 마을로 시집을 왔는데 공정엽은 농사꾼이었음. 공정 엽의 동생 공정영이 똑똑하여 인민군 점령기에 인민군 편에서 활동하여 손불 수복 후 공정엽이 경찰에 자수하러 가다가 산남 리 옷빠골 부근에서 경찰이 총살하여 동네에서 초상을 치렀음. 58 4273 임유택 (12) 2009 . 6 . 9 . 학산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사건이 났을 때는 산남2리 대성마을에 살았음. 이봉장의 고모 가 대성마을에 살아서 이봉열의 사망사실을 들었는데 이봉열 은 같은 마을 모문기가 경찰고지를 가자고 하여 따라갔다가 함께 죽었다고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