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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48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연 번 관련 사건 성명 (당시 나이) 진술일 진술장소 진술형태 주요 진술 10 2296, 2298 한규호 (15) 2009 . 3 . 4 . 송사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군유산작전이 있던 당일 경찰이 마을 방향으로 총을 쏘며 들어 오니 송사리 삼천동 뒤 비자나무골로 피난을 하였음. 노장수의 가족은 한 동네에 살았으며 노장수의 할아버지 노동준은 소개 를 나가지 않고 있다가 1951년 2월 3일 경찰에게 살해되었으 며, 채천석의 어머니 시신은 보름 정도 있다가 군유산 비자나 무골에서 보았음. 노장수 할머니 시신도 그 무렵 같은 곳에서 수습하였음. 11 3654, 4307 최정의 (14) 2009 . 3 . 4 . 송사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사건 당일 보초를 서다가 오전 6시부터 피난을 갔는데 경찰에 잡혔다가 오후 5시쯤 돌아왔음. 다음날 시신을 찾으면서 숯터 에서 아이를 업고 죽은 최명덕을 보았고, 배금술은 경찰이 손 불지서로 연행하였는데 3일 후 손불 대행동에서 시신을 수습 하였음. 최재욱은 군유산 정상에서 경찰에 잡혔는데 머리카락 을 자르고 포박하여 얼음재에서 죽였다고 들었음. 12 6739 최정의 (11) 김채섭 (20) 2009 . 3 . 5 . 송사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1948년 사건 당시 정병선은 17살이었는데 함평에 갔다 오던 중 함평읍 하느리 마을에서 경찰에게 잡혀 신광지서로 연행되 었는데 월암리 우렁굴에서 사망하였음. 신광지서에서 연락이 와 가족이 밥을 해 다녔음. 시신은 정병선의 아버지가 경찰의 연락을 받고 우렁굴에서 수습하였음. 13 7288 정상일 (17) 2009 . 3 . 5 . 송사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사건 당일 손불면 대전리, 신광면 함정리 방향에서 총소리가 들려 군유산 정상으로 피난을 갔다가 오후 7시경 내려왔음. 정동일은 사촌형님인데 수정동에 살았던 노동안이 신광지서로 잡혀갔으나 생환하였는데 이 사람이 말해주어 시신을 수습하 였음. 14 7289 심태수 (11) 2009 . 3 . 5 . 송사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사건당시 11살이었음. 1950년 12월 12일 심화택, 정병조 등과 아버지는 신여마을에 들르러 가셨음. 이날 작전을 들어온 경찰 이 주민들을 집결시키고 다른 마을 주민인 이 분들을 분류하였 는데 정병조는 경찰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 살아나왔으나 다른 분들은 경찰이 총살하였음. 돌아가신 분들의 시신은 가족들이 수습하였음. 15 3652 김용문 (10) 2009 . 3 . 5 . 송사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노상숙의 형 노광영은 동정리 수정동에 살았으며 나이는 8, 9살 더 많았음. 군유산작전 1주일 전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집결시켰는데 노광영은 반란군들의 지시로 보초를 서서 숨어 있다가 경찰에게 발각되어 다른 주민 2명과 함께 계천리 경찰고지로 연행도중 2명이 달아나자 노광영을 포승하 여 연행하였는데 시신은 찾지 못하였음. 16 2303, 4309, 2304, 4310 김채섭 (23) 2009 . 3 . 5 . 송사리 마을회관 진술조서 아침밥을 준비하던 중 피난을 갔다가 오후 5시경에 돌아왔음. 김동순의 집을 제외하고 마을이 모두 불에 탔음. 경찰은 이틀 후인 1951년 2월 21일 오후 4시경에도 마을에 와서 김재명의 할머니 강태원과 모평댁을 살해하였고 그날 경찰의 소개명령 에 마을을 비웠음. 김재현은 6촌 동생인데 영광군 군남면 남창 리 동굴뫼 앞 하천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게 살해되었음. 사망 한 사람은 김광현과 박종해, 정길선 김재현 등인데 시신은 가 족이 수습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