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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74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구 분 ~1950.6.2 5 1950.10.22 ~12.11 1950.12.12 1950.12.13 ~1951.2.18 1951.2.19 ~1951.2.22 1951.2.23 ~ 모름 계 인원수 27 29 19 29 76 40 5 225 다) 희생자의 사건별 분포 ‘함평지역 민간인희생사건’ 225명의 희생자 중 군유산 토벌작전 이후에 사망한 희생자 가 110명으로 전체의 48%를 차지하며, 158명의 희생자가 1950년 12월 12일 본격적인 토 벌작전을 전개하면서 희생되었다. 또 27명의 희생자는 한국전쟁 이전에 좌익 혐의자 또 는 빨치산 협조자로 군경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표 8> 희생자의 날짜별 분포 나. 가해군경 및 지휘관 함평지역민간인희생사건 중 군유산작전 희생자들은 1951년 2월 24일 한국경찰의 「적 일일동향보고(Daily Enemy Activity Report)」에 따르면 1951년 2월 19일 전라남도경찰 국 기동대와 함평과 영광경찰서 기동대가 군유산 인근 300여 명의 ‘빨갱이’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살해되었다. 1951년 2월 19일 군유산작전 당시 전라남도경찰국장은 심형택 경 무관이었으며, 함평경찰서장은 이철호 경감, 영광경찰서장은 이차동 경감이었다. 436) 또 경찰의 수복작전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1950년 11, 12월부터 함평경찰서장은 김판수 경감이었으며, 각 지서장은 손불 한길수, 신광 나성남, 대동 김근진, 나산 나병호, 해보 이 민순, 월야 이계필 경위였다. 437) 또 전쟁 이전 광주에서 창설 후 주둔하였던 제4연대가 지역에서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는데, 제4연대를 개칭한 제20연대가 한국전쟁이전까지 광주에 주둔하였다. 438) 따라서 함평지역 토벌작전을 담당하였던 부대는 제4연대, 제20연대로 판단되며 20연대는 1948년 11월 20일부 터는 제6여단에 예속된 것은 확인되었지만439) 대대․중대별 주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436) 1948년부터 1950년 전쟁이전까지 함평경찰서장은 최신방, 김판수, 김상효, 김판수 경감이었다. 전라남도 지방경찰청, í��전남경찰사��, 1992, 929․978․983쪽. 437) 전라남도지방경찰청 경무과-013900(2009.8.14.) 438) 이성가 중령(1948.8.14․제4연대), 위대선 중령(1948.11.25․제20연대), 박기병 중령(1949.3.31.), 국방부전 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1967, 291․330쪽. 439) 보병 제11사단, ��화랑부대 전사��, 1986, 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