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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58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진옥진은 엄다지서 경찰에게 잡혀 총살되었고, 진상식은 주변의 신고로 경찰에게 잡혔다. 그 분들은 좌익운동을 하였지만 인명살상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428) 우치리 이재관(다-3617)의 형님 이길준도 토벌작전을 나온 군인들에게 연행되었다. 신 청인 이재관은 이길준이 연행된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1950년 1월 30일(음력) 광영마을에서 토벌작전을 펴던 군인들이 큰형님을 연행하였습니 다. 당일 저녁 군인들이 마을에 와 주민들을 집결시켰는데 형님에게 ‘빨치산이 누구 집에서 묵고 갔는가’를 물어 형님이 빨치산을 재워준 집을 정아무개라고 하자 정아무개는 현장에 서 죽이고 형님은 군인들이 데리고 광영으로 갔는데 이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429) 사건 당시 이길준과 같은 마을 참고인 김철수는 이길준의 연행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길준은 전쟁 나던 해 이른 봄에 군인들에게 연행되어 갔는데 그 뒤 소식이 없습니다. 이길준은 불갑산에 작전을 나왔던 군인들이 작전 후 마을에 들어와서 데려갔습니다. 이길 준이 끌려가던 날 마을에 정만수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전날 밤에 누군가를 재워주었 다고 현장에서 총살되었습니다. 이길준은 결혼은 하였지만 후손은 없습니다.” 430) 6) 그 외 지역 함평읍 옥산리 문동식(다-10806)의 아버지 문영수는 1949년 8월 5일 거주지인 함평읍 옥산리에서 함평경찰서 사찰계 경찰 ○○○에 연행되어 함평읍 수호리에서 시신을 수습 하여 왔다. 다음은 문동식의 관련 진술이다. “아버지는 1949년 8월 5일 함평경찰서 ○○○이 마을에 들어와 연행하여 살해하였습니 다. 시신은 며칠 뒤 함평읍 수호리 뒷산에서 수습하였습니다. 경찰이 연행하는 것은 알았지 만 밤이고 11살 때라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후 지서에서 ‘가족이 연행된 사람 들은 모이라’는 연락이 와 읍내에서 집단으로 며칠간 함께 있었습니다. 시신은 종조할아버 지가 당숙과 함께 수습하였는데 아버지 옆에 다른 시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431) 428) 참고인 진용호 진술녹취(2009.4.3.) 429) 신청인 이재관 진술조서(2007.1.17.) 430) 참고인 김철수 진술조서(2009.1.15.) 431) 신청인 문동식 진술조서(2008.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