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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55 이 사건에 대하여 사건 당시 주막에 있었지만 살아남은 참고인 김동일은 당일 밤 상황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동준은 저의 선배로 사건이 나던 날 한 곳에 있었습니다. 한 밤 중이었는데 빈 집이라 경찰이 집안에 인기척을 냈고 이에 놀란 이동준은 도망하다가 경찰의 총을 맞았습니다. 저 는 그 며칠 전 철봉을 하다 다리를 다쳐 부엌에 숨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었 습니다. 다음날 아침 마을에 들어온 경찰이 이동준과 함께 있었던 사람은 나오라고 하여 나 갔더니 제 뺨을 때렸습니다.” 417) 월야면 외치리 정동진(다-6744)의 아버지 정재인은 월야지서 의용경찰이었는데 함평경 찰서로부터 출두요구를 받고 1950년 음력 5월 경찰서에 갔으나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 후 가족이 수소문하여 음력 8월 함평읍에서 시신을 수습하였다. 정재인의 사망사건에 대한 정동진의 진술이다. “아버지는 월야지서 의경으로 외치리에 살았습니다. 1950년 음력 5월말 경 경찰에서 조 사할 것이 있다고 나오라고 하여 함평경찰서에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은 음력 8월에야 찾았는데 이미 부패된 상태였습니다. 그 날짜에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어머님과 사촌형 님께 들은 바에 따르면 아버지 시신은 다른 5, 6명의 시신이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418) 월야지서 의경 정재인이 함평경찰서에 연행되어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같은 마을 참고 인 정길진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정재인은 당시 월야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월야지서에서 의경으로 있었습니다. 정재인은 인민군이 내려오기 직전에 함평경찰서에 출두한다고 갔다가 죽었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 겠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3살 더 적었습니다.” 419) 계림리 주전마을 김점례(다-8080)의 아버지 김광숙은 1950년 음력 4월 중순경 경찰에 연행되어 단오 무렵 해보면 문장저수지 부근에서 시신을 수습하였다. 다음은 김광숙의 연행 및 사망사실에 대한 김점례의 진술이다. “아버지는 1950년 음력 4월 중순경 경찰에 연행되어 단오 무렵에 시신을 찾아 왔습니다. 417) 참고인 김동일 진술조서(2009.6.19.) 418) 신청인 정동진 진술조서(2008.8.7.) 419) 참고인 정길진 진술조서(2009.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