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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54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서 경찰이 죽였다. 장성환은 우리 마을이 외가여서 마을에 자주 왔었다. 장성환의 시신은 가족이 수습하였고 현재 밀재 아래에 묘지가 있다”고 진술하였다. 413) 장성군과 삼서면과 인접한 월야면 예덕리 조유복(다-7284)의 아버지 조동선은 1949년 9월 6일(음력 윤 7월 14일) 장성군 삼서면 삼서지서로 연행되어 고문당한 후 사망하였다. 다음은 ‘유복자’인 조유복의 진술이다. “아버지는 월야면 예덕리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는데 빨갱이를 도와주었다고 경찰에 연 행되어 고문을 받고 1949년 9월 6일 사망하였습니다. 예덕리가 장성군 삼서면과 인접하여, 삼서지서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서 김동선을 찾았는데 ‘김동선은 없고 조동선이 있다’고 하 자 아버지를 연행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경찰의 고문으로 얼굴만 겨우 알아볼 정도였는데 시신을 수습하여 백부의 밭에 매장하였습니다.” 414) 조동선이 장성경찰서 삼서지서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한 사실에 대하여 조동 선의 아내인 이귀례는 당시의 상황을 진술하였다. “남편은 논에서 일을 하다가 삼서지서로 연행되었습니다. 경찰은 그날 남편 외에도 다른 사람도 지서로 연행하여 고춧가루로 고문을 하였습니다. 남편이 연행된 뒤 임신한 상태에 서 날마다 지서로 밥을 날랐지만 남편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밥을 날라서 아는데 삼 서지서에서 11일 동안 이나 경찰의 고문을 받았습니다. 시댁과 따로 살았고, 제가 임신 중 이라 시댁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하였습니다.” 415) 양정리 방축마을 빈집에 또래와 함께 있었던 이영기(다-10217)의 형님 이동준은 주변 을 순찰하던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다음은 이영기의 진술이다. “둘째형님 이동준이 1950년 4월 8일(음력 2월 21일) 양정리 방축마을 주막에서 월야지서 경찰에게 죽었습니다. 형님의 사망소식은 함께 있었던 방봉규가 전해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전날 밤 형님과 방봉규, 김동일, 주막 주인 등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문 밖에서 갑자기 ‘손들어’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놀라서 김동일은 짚 속에 숨었으나, 형님은 부엌문 을 열고 숨으려다가 경찰의 총을 맞고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416) 413) 참고인 황봉채 진술조서(2009.6.11.) 414) 신청인 조유복 통화보고(2009.3.16.) 415) 참고인 이귀례 통화보고(2009.3.16.) 416) 신청인 이영기 진술조서(2008.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