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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53 4) 월야면 불갑산 밀재 아래 용정리 복용마을 양윤식(다-5611)의 사촌형 양윤초가 1948년 11월 26일(음력 10월 26일) 밤 함평경찰서 경찰에게 연행되어 마을 앞 네거리에서 살해되었다. 당시 양윤초의 옆집에 살았던 양윤식의 진술이다. “양윤초는 사촌형님인데 용정리 복용마을에서 살았습니다. 1948년 11월 26일(음력 10월 26일) 한 밤중 경찰 30여 명이 양윤초를 마을 밖에서 살해하여 시신은 새벽에 찾아왔습니 다. 제가 15살 때였는데 옆집이어서 목격하였습니다. 경찰은 청년 2명을 연행하여 왔는데 사촌형까지 셋을 자초지종도 듣지 않고 마을 앞에서 총살하였습니다. 연행된 사람은 외치 리 사는 정 씨와 용정리 용수마을 장씨였습니다.” 410) 양윤초가 1948년 11월 26일 마을 밖에서 경찰에 의하여 살해될 때 마을에 있었던 참고 인 황봉채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양윤초가 총살된 날 한 밤중에 총소리를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다른 2명과 함께 마을 앞 사거리에서 살해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함께 사망한 사람은 용정리와 외치리에 사는 사 람이었습니다. 함평경찰서 김천만이 기동대와 함께 외치리, 용정리 용수를 거쳐 우리 마을에 왔습니다. 시신은 각기 가족이 가져갔고, 양윤초의 시신은 동네 옆에 매장하였습니다.” 411) 용정리 송정이 본가였으나 처가인 예덕리 망가촌에서 생활하였던 장창환(다-5615)의 형 장성환(이명(異名) 장양규)은 1949년 11월 30일(음력 10월 11일) 월야지서 경찰에게 정산리 장교마을에서 살해되었다. 다음은 장창환의 진술이다. “저는 당시 10살로 나산면 용두리에 있었고, 부모님은 용정리 1구 송정에 계셨습니다. 형 님은 면사무소에 일을 보러 간다고 나갔다가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형님은 당시 농사를 지 으면서 처가와 본가를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1, 2년 정도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 었습니다. 마을에 이석동, 장봉규가 계셨는데 이석동은 우리 집에 자주 왔고, 장봉규는 먼 친척이었는데 두 분 모두 보도연맹원으로 돌아가셨습니다.” 412) 장성환이 경찰에 연행되어 정산리 장교마을에서 경찰에게 살해된데 대하여 참고인 황 봉채는 “장성환은 장창환의 장형인데 20대 후반으로 양윤초가 사망한 지 1년 정도 지나 410) 신청인 양윤식 진술조서(2008.6.11.) 411) 참고인 황봉채 진술조서(2009.6.11.) 412) 신청인 장창환 진술조서(2008.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