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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52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전주현은 대각리 기동에 살았는데 동네에서는 전영환으로 불렀습니다. 전쟁이전 해보 지서에 연행되었는데 시신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분은 구장으로 밤에는 반란군을, 낮에 는 경찰을 무마하여 주민들의 피해를 막아 주었습니다. 그분이 입을 열면 여럿이 죽는다 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정부칠의 동생이 정오복인데 함평경찰서 유격대원이었습니 다. 정오복은 전쟁 때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이채범은 마을에서 반란군으로 활동하였던 사 람입니다.” 407) 1949년 9월 10일(음력 7월 28일) 불갑산 아래 광암리 운암마을에서 윤춘열(다-2956)의 작은 형 윤춘식이 불갑산 작전을 다녀오던 경찰의 구타로 사망하였다. 사건 후 윤춘열의 가족은 경찰의 소개명령으로 신광면 삼덕리 ‘새납골’로 피난을 나왔고 11월 27일(음력 10 월 8일) 큰형 윤춘하가 새납골에서 작전을 나온 경찰에 살해되었다. 당시 사건에 대하여 윤춘열의 진술이다. “당일 함평경찰서 유격대가 동네에 불을 지르고 대장이 작대기로 작은 형님을 패면서 이 리저리 끌고 다녔는데 형님은 소리치면서도 끌려 다녔습니다. 얼마 후 유격대장이 권총을 꺼내 작은형을 쐈습니다. 작은형 사건 이후 가족은 큰형 처가인 신광면 삼덕리 새납골로 피 난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 신광 경찰이 새납골을 포위하고 큰형을 잡아갔습니다. 경 찰은 마을 당산 앞에서 큰형을 총살하였습니다. 시신은 모두 수습하였습니다.” 408) 사건 당시 광암리 운암마을에 살았으며 경찰의 소개명령에 신광면 삼덕리 새납골로 피 난을 나갈 때 윤춘열의 가족과 함께 나갔던 참고인 윤병옥은 윤춘열 형제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저는 산내리 처가에 있어서 다음날에야 윤춘식이 죽은 것을 알았습니다. 윤춘식은 외딴 집에서 누에를 키우면서 살았는데 사건 무렵 경찰이 마을에 자주 들어왔습니다. 윤춘식이 미혼으로 죽어서 묘지는 없습니다. 그 뒤 마을이 소개되고 윤춘하도 신광 삼덕리 새납골로 나갔습니다. 윤춘하는 신광지서 경찰에게 끌려가면서 죽었습니다. 경찰 눈에 띄면 어떻게 될 줄 몰라 제가 보지는 못하였지만 새납골에서 살해된 것은 맞습니다.” 409) 407) 참고인 김석주․박용원 진술조서(2009.6.18.) 408) 신청인 윤춘열 진술조서(2008.4.23.) 409) 참고인 윤병옥 진술조서(2009.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