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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51 경찰 6, 7명이 술을 먹고 가다가 감나무에 새가 있어 총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마을 초입에 서 망을 보던 빨치산이 총성에 놀라 경찰에게 총을 쏘았고 경찰이 전사하였습니다. 할아버 지는 용두리로 피난을 갔는데 다음날 실 꾸러미를 가지러 마을에 가셨습니다. 그때 경찰이 할아버지를 총살하였습니다.” 404) 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 마을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윤금중은 사건 전후의 상황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전날 경찰이 마을을 포위하였고 이장이 경찰에게 점심을 대접하였는데 이를 알게 된 반 란군이 마을 입구에 있다가 경찰 8명을 살해하였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다음날 마을에 다 시 왔는데 젊은 사람은 모두 피난을 갔고 정항수와 윤진병만 마을에 있다가 경찰에게 연행 되어 죽었습니다. 연도는 정확히 모르지만 윤진병이 저의 삼당숙인데 제사가 정월 23일입 니다.” 405) 1949년 음력 7월 경 대각리 오두마을 전귀임(다-8490)의 아버지 전주현은 대각리 이장 이었는데 경찰의 호출로 해보지서에 출두하였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은 전주현이 연 행된 사건에 대한 전귀임의 진술이다. “같은 동네 정부칠의 동생이 경찰이었는데 반란군이 구장인 저의 아버지를 시켜서 정부 칠의 동생을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부칠 의 집안에 이 말을 전해주었음 에도 해보지서에서 출두하라고 하여 가셨는데 그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해보지서 변 순 경이 반란군 두목 이채범을 찾아내라고 아버지를 문초하였음에도 말을 하지 않으니까 변 순경이 죽였다고 합니다.” 406) 전귀임의 아버지 전주현이 해보지서에 연행된 사건에 대하여 당시 광암리 운암에 살았 던 참고인 박용원과 김석주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음은 전주현과 관련된 박용원․ 김석주의 진술이다. 다. 그러나 당시 보도내용을 볼 때 사건은 1949년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404) 신청인 정일성 진술녹취(2008.6.27.) 405) 참고인 윤금중 진술조서(2009.6.17.); 신청인 윤석곤과 정일성, 참고인 윤금중은 사건발생 일을 일치하여 음력 1월 24일로 진술하였으나 발생연도를 다르게 진술하였다. 그러나 호남신문은 사건 발생 일을 1949 년 2월 20일로 보도하였다. 신청인 정제영도 ‘정춘석이 1949년 1월 19일(음력) 창서마을에서 연행된 지 며칠 뒤 창서마을에서 경찰이 전사하였다’는 진술을 하였다. 신청인 정제영 진술조서(2007.9.7.) 406) 신청인 전귀임 진술조서(2008.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