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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49 불러냈습니다. 채돌병은 이미 산으로 피해버려 군인들이 큰아버지인 할아버지를 불러내어 함정리 구봉잔등으로 데려가 총살하였습니다. 1951년 정월 초사흘 새벽에는 아버지가 빨치 산에 연행되어 살해되기도 하였습니다.” 395) 채수영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당시 신광면사무소 공무원이었던 참고인 모원은 “채두표 는 보여리에 살았는데 소개를 나왔다가 빨치산에게 죽었다. 채두표의 아버지가 채수영인 데 채두표는 나와 친구였다. 채두표의 아버지 채수영도 조카 때문에 전쟁 이전 군인들에 게 살해되었다”고 진술하였다. 396) 채수영의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채수영의 사망일자는 ‘1949년 5월 21일 마을 앞에서 사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백운리 강춘오(다-4426)의 아버지 강성문도 ‘운행굴’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강성문 은 백운리 종곡에 살면서 삼천동에서 보리 방앗간을 운영하였다. 1949년 8월 16일 밤 마 을 앞 조밭에 빨치산이 숨어들자 경찰과 총격전이 있었고 다음날 강성문은 경찰에 연행 되었다. 다음은 신청인 강춘오의 진술이다. “아버지 강성문은 1949년 8월 16일(음력 7월 22일) 아침 신광지서 경찰 2명에게 지서로 연행되어 그날 오후 운행굴에서 사망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밭일을 하다 연행되었는데 안면 있는 경찰이 집안 어른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려주어 시신은 수습하였습니다. 사건 전날이 신광장날이었는데 아버지는 장에 가셨다가 술집 주인과 다툼이 있었는데 그 옆방에 경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397) 강성문의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사망일자가 ‘1949년 9월 12일 백운리 351번지 사망’ 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전쟁 전인 1949년 9월 17일(음력 7월 25일) 가덕리 황금자(다-1051)의 시아버지 임양욱 은 토벌작전을 다니던 경찰에 의하여 마을 앞에서 살해되었다. 다음은 임양욱의 사망사 실에 대하여 황금자의 진술이다. “시아버지는 사건이 났을 때 이장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1949년 음력 7월 25일), 유격대가 마을 앞을 통과하면서 주민들에게 밥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시아버지와 반장 양 순기가 ‘아래 마을에서 밥을 하니 우리는 안 해도 되겠다’고 하였는데 경찰은 그 말을 불평 395) 신청인 채정자 진술조서(2008.4.4.) 396) 참고인 모원 진술녹취(2009.3.6.) 397) 신청인 강춘오 진술조서(2008.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