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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41 산지서 경찰에 의하여 살해되었고 삼촌 진귀식은 진상식이 사망한 뒤 연행되었다. 진상 식의 사망사실에 대한 진효남의 진술이다. “아버지가 밤손님의 협박으로 따라간 적이 있는데 이를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경찰을 피하여 면소재지에 은신하였는데 이 때문에 어머니가 경찰에 끌 려가 고문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그 뒤 아버지는 경찰에게 연행되어 도장골에서 사망하셨 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삼촌이 경찰에 잡혀갔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은 ‘도장골’에서 아버지 친구가 수습하여 마을 뒷산에 매장하였습니다.” 367) 진상식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진용호는 “진상식은 쫓겨 도망가다 경찰의 총격에 마을에서 죽었다”며 “진상식의 후손도 아들이 한 명 있다. 그리고 진귀식의 시신은 찾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 368) 나) 해보면 대창리 창서마을 이점봉(다-5311)의 오빠 이금범은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다 전쟁이 일 어나자 고향에 내려와 문장에 있던 학도연맹 사무실에 나갔다. 1951년 1월 마을 앞에서 동료 학도대원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이금범은 학도연맹원에게 연행되었다. 다음은 이점 봉의 진술이다. “오빠 이금범은 광주사범학교 2학년에 다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에 내려와 문장 학도 대 사무실에 나가면서 활동하였습니다. 1951년 1월 경 대창리 앞에서 동료 학도대원이 같 이 활동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자 대창으로 찔렸고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아버지께 서 오빠가 문장에서 칼로 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빠의 시신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습 니다.” 369) 사건 당시 대창리 창서마을에 거주하며 사건을 인지하였던 참고인 윤금중은 이금범이 학도연맹원에게 연행된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금범은 저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았습니다. 그 사람은 학도병이었는데 조직에서 찍 366) 진상식은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포고 제2호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í��서기 1947년 刑公第245號��, 1947.9.6, 광주지방법원목포지원. 367) 신청인 진효남 진술조서(2008.3.29.) 368) 참고인 진용호 진술녹취(2009.4.3.) 369) 신청인 이점봉 진술조서(2007.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