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page

제 7 권 138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들이 없어 박해남이 셋째 부인으로 김용구를 낳았습니다. 1950년 12월 24일 오전 10시쯤 경 찰이 우리 마을에 와 주민들을 마을 어귀 앞 텃밭에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역자를 선별하 면서 김인수도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분이 부역할 사람은 아니었는데 왜 죽였는지 모르 겠습니다. 고산동 뒷산에서 총살하였는데 시신은 집안에서 수습하였습니다.” 354) 4) 나산․해보․월야면 등 그 외 지역 가) 나산면 나산면 용두리 정문갑(다-2836)의 조부 정삼석, 정제창(다-2840)의 부 정한석, 정제숙 (다-6328)의 아버지 정수석이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경찰에 의하여 사망하였다. 정문갑의 할아버지 정삼석은 1951년 2월 25일 제사에 다녀오다가 용두리 석현에서 경 찰의 검문에 잡혔는데 회화정마을 인근에서 경찰이 총살하였다. “할아버지 정삼석이 친척의 기제사에 다녀오면서 할머니께 주려고 음식을 가져오시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렸습니다. 경찰이 이 음식물을 빨치산에게 제공할 것으로 생각하여 할아 버지를 총살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시신은 집안 어른들이 회화정에서 수습하셔서 이문리 야 산에 매장하였습니다.” 355) 정제창의 아버지 정한석은 1950년 12월 19일(음력 11월 11일) 인민군 점령기 활동과 관 련하여 나산지서에 자수하러 갔었는데 다음날 경찰이 함평경찰서로 이송한다면서 나산 면 덕림리 ‘배안골’에서 살해하였다. 다음은 정제창의 진술이다. “어머니 말씀이 경찰이 아버지를 총살하였는데, 아버지는 두개골에 총을 맞고 돌아가셨 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은 나산면 덕림리 배안골 기슭입니다. 아버지는 수복 후 주변에서 자수하라고 하여 자수하러 갔었는데 경찰에게 총살되었습니다. 시신은 집안 어른 들이 수습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음력 11월 11일입니다.” 356) 정춘석과 정한석의 조카인 참고인 정제영은 “‘정한석이 인민군 점령기 분주소장을 하 였던 것’ 때문에 정수석과 같이 자수하러 갔었는데 경찰에게 총살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정제숙의 아버지 정수석은 정한석과 함께 1950년 12월 20일 덕림리 배안골에서 경찰의 354) 참고인 김영률 진술조서(2009.4.2.) 355) 신청인 정문갑 진술조서(2008.3.15.) 356) 신청인 정제창 진술조서(200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