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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36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잡아다 강운리에서 백호리로 넘어가는 공동묘지 부근에서 총살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시 신은 집안일을 하던 곽원용이 수습해 왔다고 합니다.” 344) 김영호가 백호리 공동묘지 부근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참고인 김진배는 “김영호도 20대 후반이셨는데, ○○○의 손가락질 때문에 사망하였다. 시신은 곽원용이라 고 이웃에 살았던 분이 수습하여 임시로 매장하였다가 강운리 송산마을 옆 ‘거무네’에 이 장하였다”고 진술하였다. 345) 덕산리 아차마을 김만수(다-3365), 이순화(다-3964) 가족은 1951년 1월 6일(음력 11월 29일) 용성리 금성동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신청인 이순화는 1955년 출생으로 사건 당시가 출생 전이었고 사건의 내용은 나중에 주변에서 듣고 알게 되었다. 다음은 이 사건 에 대한 김만수와 이순화의 진술이다. “형 김만석이 좌익 활동을 하여서 어머니 이발산․형수 박 씨․조카 김○○ 등 3명이 1951 년 1월 6일(음 1950년 11월 29일) 덕산리 아차동에서, 대동지서 의용경찰 윤필중, 노병선, 여 차현, 정재수와 형사 ○○○ 등에게 연행되어 3일 후 용성리 금성동 모퉁이에서 총살되었습 니다. 경찰과 의용경찰 10명이 마을을 둘러싸고 총과 죽창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이 형순, 정영채 가족까지 11명을 지서로 연행하여 살해하였는데 시신은 수습하였습니다.” 346) “할머니, 백모 박동순, 미혼이었던 중부 이이순, 사촌오빠 2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덕산리 아 차마을에 살았는데 1951년 1월 3일(음력 1950년 11월 26일) 함평경찰서 대동지서 경찰 ○○○, ○○○ 등이 아차마을 주민을 마을 앞에 집결시킨 후 14명을 대동지서로 끌고 가 3일 후인 1 월 6일 용성리 금성동 산모퉁이 기슭에서 총살하여 가족이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347) 덕산리 아차동에서 발생한 김만수, 이순화 가족이 대동지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덕산리 주민 김종남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김만수와 이순화 두 사람 모두 아차동에 살았습니다. 김만수의 형 김만석, 이순화의 큰 아버지 이형순이 입산하였는데 이 때문에 김만수의 어머니와 형수, 조카와 이형순의 동생 이형돈, 어머니, 이형순의 처와 아들이 경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이순화의 아버지 이형렬 은 당시 나이가 어려 죽이지 않았습니다.” 348) 344) 신청인 김맹수 진술조서(2008.5.22.) 345) 참고인 김진배 진술조서(2009.4.2.) 346) 신청인 김만수 진술조서(2007.11.2.) 347) 신청인 이순화 진술조서(200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