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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35 1950년 12월 10일에도 강운리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사망한 주민들이 있었다. 은순자 (다-3635)의 남편 김병오, 모상오(다-3918)의 아버지 모성학도 향교리 고산골에서 경찰에 게 살해되었다. 다음은 은순자, 모상오의 진술이다. “남편 김병오가 1950년 12월 10일(음력 11월 2일) 향교리 고산골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가 사망소식을 듣고 시신은 수습하였습니다. 남편은 ‘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겠다’면서 혼자서 함평읍에 방을 얻어 나가서 살았습니다. 밤손님이 길을 막아 3~4 일 야경을 나가지 못하다 다시 함평읍으로 야경을 나가려고 밤중에 집을 나서다 경찰에게 잡혀 향교리 고산골로 끌려가 살해되었습니다. 같은 날 모성학도 끌려가 죽었습니다.” 341) “아버지 모성학은 1950년 12월 10일(음력 11월 2일) 함평읍 내교리 고모 집에서 오시다 가 이종범에게 연행되어 김병오와 함께 3~4km 떨어진 고산골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종 범의 처가가 우리 동네였는데, 빨치산이 이종범의 처가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이종범 이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죽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김병오와 함께 이종범에게 연행되어 사망하였습니다. 시신은 마을의 어른들이 수습하여 현장에 매장하였습니다.” 342) 김병오, 모성학이 함평읍과 대동면 향교 사이에서 이종범에게 연행되어 향교리 고산골 에서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같은 마을에 살았던 손봉수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김병오와 모성학(이명 모소자)이 경찰에게 살해된 것은 ○○○과 관련 있습니다. ○○ ○은 주민들이 소개를 나간 뒤 마을에 남았다가 경찰에 잡혔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 을 주민들이 피난 나간 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강운리 주민을 찾아내도록 하였습니다. 또 읍내 영수교에 ○○○이 경찰과 같이 있으면서 동네 사람이 지나가면 손가락질하였고 그러 면 경찰이 죽였는데 김병오나 모성학뿐만 아니라 여럿이 죽었습니다.” 343) 김병오와 모상학이 향교리 고산골에서 경찰에 살해된 뒤인 1950년 12월 19일(음력 11 월 11일) 김맹수(다-3628)의 아버지 김영호도 경찰에 연행되어 강운리와 백호리 사이 공 동묘지에서 경찰에 살해되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신청인 김맹수의 진술이다. “어머니, 할머니께 들었는데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피신을 가셨습니다. 피신 중 마을이 잠잠해지니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셨는데, 이를 알고 경찰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 아버지를 340) 참고인 손봉수 진술조서(2009.4.2.) 341) 신청인 은순자 진술조서(2008.5.22.) 342) 신청인 모상오 진술조서(2008.6.12.) 343) 참고인 김진배 진술조서(20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