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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30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다”고 진술하였다. 315) 신청인 김영화(다-2235)는 숙부 김수복에 관하여 “숙부는 김기병으로도 불렸는데 경찰 이 원산리 원남마을 하천에서 죽였다.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누구누구 나오라’고 지목하 여 원남마을 쪽으로 데려가다 총살하였다. 그 무렵 빨치산이 3, 4일에 한 번씩 마을에 내 려와 식량 등을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316) 신청인 천동연(다-2295)은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는 잘 모르지만 큰집에서 아버지에 관하여 들은 내용은, 아버지는 목수로 면사무소 옆에 살았는데 원산 리 덕동마을에 가셨다가 경찰에게 살해되었다고 들었다. 경찰이 주민들을 동네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 나갔는데 아버지가 조금 늦었다. 경찰이 이 때문에 아버지를 끌고 갔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317) 또 김종수의 양자로 입양된 김영이(미신청)는 “생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직접 들었는데 양부 김종수는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동네에서 불러낸 4명과 함께 원남마을 앞 으로 끌고 가서 죽였다는 이야기를 생부께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318) 원산1리 원남마을 주민 조기천(다-2241)의 형 조기형은 1950년 12월 11일(음력 11월 3 일) 경찰의 명령으로 월암리 연천마을로 소개를 나가다가 면소재지에서 경찰에 연행되었 다. 조기형의 시신은 한 달 정도 지나 계천리 계월마을에서 수습하였다. 또 같은 마을 김 용찬(다-2242)의 부 김경수와 형 김용운도 12월 8일(음력 10월 29일) 경찰의 소개명령으 로 백운리 종곡으로 이삿짐을 나르다가 면소재지에서 경찰의 검문에 걸려 아버지 김경수 는 현장에서 살해되었고, 형 김용운은 연행되었는데 한 달 뒤 시신을 수습하였다. 당시 마을의 상황에 대한 신청인 조기천과 김용찬의 진술이다. “불갑산 용천사까지 거리가 2㎞ 정도인데 밤마다 빨치산 6, 7명이 ‘따쿵총’을 가지고 내 려와 주민들을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주민들이 빨치산의 위협으로 밥을 해주 면, 빨치산에게 밥을 해주었다고 한 마을에 살았던 김용우, 임영춘, 이윤양, 이만옥, 이천옥 등 눈에 보이는 젊은 사람을 모두 연행하였습니다.” 319) “사건 며칠 전 영광에서 함평으로 이동하던 경찰차량이 삼덕리 좌야 옆산 봉우리(고깔 315) 신청인 서영순 진술조서(2008.4.21.) 316) 신청인 김영화 진술조서(2008.4.22.) 317) 신청인 천동연 진술조서(2008.3.4.) 318) 참고인 김영이 통화보고(2009.8.31.) 319) 신청인 조기천 진술조서(2008.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