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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28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주민들 대부분은 경찰고지가 있었던 계천리, 백운리 등 아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소개 를 나갔습니다. 채동만과는 먼 친척인데 경찰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채동만은 복흥리 복치 마을에 소개를 나갔습니다. 나중에 채동만의 아버지가 부상당하였다는 것과 형님 채만택이 경찰에게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304) 경찰은 1950년 12월 12일 함정리 구봉마을에 처음 진주하였다. 함정리는 군유산과 불 갑산, 함평군과 영광군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어서 경찰과 빨치산의 교전이 잦았고 이 때 문에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305) 일제 작전이 있은 뒤 경찰은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에게 소개명령을 내렸다. 함정리 강 재원(다-4314)의 숙부 강대식과 강대원, 당숙 강재환도 면소재지로 소개를 나왔다. 다음 은 신청인 강재원의 진술이다. “우리는 신광국민학교 관사로 소개를 나왔습니다. 숙부 강대식, 당숙 강재환은 관사마당에 서 함평경찰서 기동대에게 연행되었습니다. 또 강대원 숙부도 이틀 뒤 까마귀머리산에서 살 해되었습니다. 경찰의 소개명령에 젊은 남자들이 피난 갈 곳을 의논하였는데 이 모임에 숙부 강대원도 참석하였고, 음력 11월 7일 경찰은 모임에 참석하였던 김일근, 배한섭 등을 계천리 계월마을 앞산에서 총살하였습니다. 강대원의 시신은 동네 앞산에 매장하였습니다.” 306) 경찰가족이었던 참고인 김병일은 당시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강재원의 숙부 강재환은 외지에서 생활하다 들어왔고 강대원은 저보다 연장자로서 한 마을에 살았습니다. 동짓달 초에 경찰이 처음 들어왔는데 그 얼마 뒤 강대원과 강대식이 마 을 청년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제 아버지 도 1950년 음력 10월 15일 군유산의 반란군에게 돌아가셨습니다.” 307) 1950년 12월 15일(음력 11월 7일) 계천리 계월마을 앞 까마귀머리산에서 경찰에게 살 해되었던 김일근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아들 김병섭(미신청)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음력 동짓달 초였는데 경찰이 피난을 나가라고 하여 면소재지인 월암리로 피난을 나왔 습니다. 아버지는 눈이 와서 눈가래를 만들려고 나가셨다가 경찰에게 연행되었습니다. 어 304) 참고인 채윤표 진술조서(2009.4.1.) 305) “반란군들이 경찰에게 정보를 전달하였다고 연화마을에서 3부자를 잡아다가 우리 마을 앞에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신청인 강재원 진술조서(2008.5.9.) 306) 신청인 강재원 진술조서(2008.5.9.) 307) 참고인 김병일 진술조서(2009.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