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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26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당시 시조부모님, 시부모님, 시숙부 박용봉 등 7식구였습니다. 1951년 1월 12일 경찰이 젊은 사람을 연행하니 가족은 시어머니 친정인 계천리 사천으로 갔답니다. 시아버지는 그 곳에서 경찰에게 잡혀 월암리 우렁굴에서 살해되었고 시숙부 박용호, 용봉 두 분은 경찰 앞 이라 겁을 먹고 말을 제대로 못하니 함정재로 데려다 죽였다고 합니다. 그 무렵 시당숙 한 분이 군유산과 마을을 연락하는 일을 하였답니다. 시신은 시조부께서 장전마을까지 가져다 매장하였습니다.” 296) 박용화와 인척관계였던 정내숙은 보여리에서 1㎞ 남짓 떨어진 사간동에 살았는데, 박 용화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박용화의 아버지가 고모부였을 뿐만 아니라 그 집 앞에 논이 있어 농사지으면서 자주 드 나들었습니다. 박용화는 경찰유격대가 사천마을에 들어와 잡아다가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박용화의 작은 아버지 박명환의 아들이 반란군과 연관된 활동을 하여서 이 때문에 박용화도 잡혀갔습니다. 박명환의 아들이 인공시절에 우리로 말하면 경찰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297) 박용호․용봉형제의 거주 마을인 보여리 장전 주민 채희원은 박용봉 형제에 관하여 다 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박용호와 박용봉은 영광과 함평의 경계인 함정리 함정재에서 죽었습니다. 박용봉은 저 보다 7, 8살 위였습니다. 박용봉은 징용을 가서 원자탄을 맞은 상태에서 귀국하였는데 그 때문에 손을 떨었습니다. 박용호와 박용봉의 시신은 가족이 수습하였고 마을에 묘소가 있 습니다.” 298) 보여리 기동에 살면서 1950년 12월 12일 경찰의 소개명령으로 모동진(다-4691)의 형제 는 모우봉의 동서인 대창부대원 장길수의 집으로 소개를 나왔다. 12월 13, 14일경 장길수 가 모우범 형제에게 경찰고지에 가서 신고를 하여야 한다고 하여 모우범․우봉은 경찰고 지에 신고하러 나갔다가 살해되었다. 다음은 모동진의 진술이다. “종곡에 살았던 장길수가 대창부대였는데 셋째형님의 동서여서 그 집에 있었습니다. 저는 어려서 집에 있었고 형님들만 경찰고지로 신고하러 갔는데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 니다. 그 후 아버지가 형님들 사망소식을 들었는데 시신을 보니 대창에 찔려 있었습니다. 시 296) 신청인 곽일례 진술조서(2008.5.9.) 297) 참고인 정내숙 진술조서(2009.3.31.) 298) 참고인 채희원 진술조서(20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