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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20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전경복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임민채는 “경찰이 처음 들어온 날인데 주포에서 들어온 경찰이 양재리 봉우재에서 총격을 가하였다. 나는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해 가 넘어갈 무렵, 경찰이 철수한 뒤에야 마을에 내려왔는데 그때 전경복이 사망하였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269) 2) 신광면 가) 송사리 송사2리 해안마을 노정순(다-2739)의 시어머니 김감산270)은 1950년 12월 12일 대부분 의 젊은 사람들은 군유산으로 피난한 상태에서 집안에 남아 있다가 마을에 들어온 경찰 에게 살해되었다. 다음은 신청인 노정순의 진술이다. “20살에 시집와서 큰동서에게 들었습니다. 불갑산 폭도가 군유산으로 이동하면서 경찰과 교전하였는데, 폭도가 산으로 쫓겨 간 후 마을에 불을 질러 남아있던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미리 도망갔지만 노약자들은 그러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저희 어머님과 큰어머니가 경찰의 총을 맞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271) 당시 해안마을 상황에 대하여 안의순은 “1950년 12월 12일 아침밥을 먹은 후였는데 갑 자기 총소리가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마을을 사이에 두고 앞산에는 경찰이, 뒷산 에는 반란군이 있었는데 양측의 교전이 벌어졌다. 그 뒤 젊은 사람들은 피난을 갔고 노인 과 아이들만 남아있었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은 사망경위에 대한 안의순의 진술이다. “저는 피난을 갔다가 어스름할 무렵에 내려왔습니다. 그날 교전 후 경찰이 마을을 돌면 서 불을 지르고 미처 피난가지 못한 노약자들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노정순의 시어머니 김감산의 시신은 군유산으로 피난 갔던 아들 2명과 큰며느리가 마을로 내려와 수습하였습 니다.” 272) 해안마을 안의순(다-2742)은 자신은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지만 여동생 안순자(1942년 출생)와 안판례(1945년 출생)는 마을에 남아 있다가 경찰에 살해되었다. 신청인 안의순의 268) 참고인 전태범 진술조서(2008.5.21.) 269) 참고인 임민채 진술조서(2009.5.26.) 270) 시어머니 성함이 있었는데, 호적을 정리하면서 이름을 몰라 친정마을명인 ‘감산’을 써서 김감산이라고 정 했다고 합니다. 동네에서 감산댁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청인 노정순 진술조서(2008.4.23.) 271) 신청인 노정순 진술조서(2008.4.23.) 272) 참고인 안의순 진술조서(2009.3.5.)